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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IMF를 가지 않았으면 국가부도를 피했을까

입력
2018.12.1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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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IMF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영화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집권층이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국민을 고통에 빠트렸다는 의혹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IMF 요구대로 구조조정을 해서 알토란 같은 기업을 미국 자본이 헐값으로 집어삼키게 했고 많은 실업자가 발생했다는 음모론이다.

IMF가 1945년 12월 27일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미국이 최대 지분국가(지분율 17.46%)로서 영향력이 큰 것은 사실이다.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경제체질 개선 요구를 덧붙이는 탓에 자금이 필요한 나라도 IMF행은 이리저리 발버둥 쳐 본 후 마지막으로 택하는 길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IMF에 들어가는 것은 국가 주권을 포기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회원국이면 매년 해야 하는 경제협의에서도 IMF로부터 많은 잔소리를 들어야하므로 IMF가 고까운 것은 우리나라만도 아니다.

상당수 국가들이 IMF의 권고에 대해 저항감을 갖고 심지어는 연례협의를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베네수엘라이다.

베네수엘라는 1999년 차베스가 집권하면서 각종 사회복지정책을 동시에 밀어붙였다. 석유매장량이 2억배럴을 넘어 사우디아라비아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인 나라인 만큼 석유의 힘을 믿은 것이다. 통 큰 사회복지정책은 5년 만에 빈곤율을 절반 이하(47%→21%)로 떨어뜨렸고 빈민 계층을 중심으로 국민은 열렬히 환호했다. 문제는 풍부한 석유자원을 가지고도 힘에 부쳤을 만큼 과도했다는 점이다. 재정이 바닥나자 차베스는 중앙은행을 동원해서 화폐를 찍어 복지정책의 비용을 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화폐가치가 폭락했고 베네수엘라는 환율을 이중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즉, 시장 환율보다 턱없이 낮은 공식 환율을 운용하고 정부가 외환을 통제한 것이다. 2004년 IMF가 발권력을 동원한 복지지출과 복수환율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정책 공고를 발표하려고 하자 베네수엘라는 IMF와의 일체의 정책협의를 거부했다. 최근까지 협의가 재개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므로 14년 동안 IMF와 단절한 것이다.

IMF와의 소통을 거부한 것이 국가적 자존심을 지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경우도 대부분 참혹한 경제 실패로 결말이 났다. IMF의 권고는 정형화된 틀이 있는 게 아니라 그 나라가 안고 있는 경제의 구조적 실패를 고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우리나라에는 재벌과 금융개혁을 요구했지만 2011년 그리스에는 연금과 의료개혁을 주문했던 것이 좋은 예다. IMF 입장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을 방치하고 자금을 지원해 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이나 다름없다.

IMF가 설립된 지 70년 이상이 흐르는 동안 IMF 신세를 지지 않은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G20 국가 중에서는 독일,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 심지어 미국도 구제금융을 받은 적이 있고 영국은 아예 단골손님이었다. IMF 프로그램을 받은 나라들의 명과 암은 국민들의 고통분담 의지에서 갈렸다. 최근의 가장 성공사례인 아일랜드는 유럽 재정위기로 2010년 IMF 프로그램을 받게 되자 국민이 일치단결해서 IMF 요구보다 강력하게 구조조정을 했고, 3년 만에 IMF 위기를 졸업했다.

다시 1997년으로 되돌아가서 만일 우리가 IMF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과 이들 기업에 대한 대출로 부실해진 은행들을 연명시키느라 막대한 돈을 썼을 것이다. 실업이나 도산과 같은 고통을 일시 모면했겠지만 이들이 재기하지 못하고 짐덩어리가 되어 더 큰 위기를 초래했던 것이 많은 나라의 사례이다.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금을 모았고 경제를 회생시킨 기적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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