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을 마친 고3 학생들이 강릉 펜션에서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경을 헤매던 학생 중 일부가 의식을 찾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후유증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산화탄소 중독 치료에 필수적인 고압산소치료기가 공공병원에도 갖춰지지 않은 문제점도 지적됐다.
앞서 서울 대성고 3학년생 10명은 강원도로 단체 여행을 갔다가 18일 숙박 중인 펜션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후송됐다.
사경을 헤매던 학생들이 조금씩 의식을 찾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후유증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19일 MBC 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을 통해 “당장 일산화탄소 중독에서 회복된 것처럼 보여도 몇 주 후 기억력 상실이나 운동장애, 우울증 같은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혈액 속 헤모글로빈은 폐에서 산소와 결합한 뒤 체내 각 부분에서 산소를 분리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일산화탄소는 산소보다 250배 쉽게 헤모글로빈과 결합한다. 체내에 일산화탄소가 들어와 헤모글로빈과 결합하면 장기가 숨을 쉬지 못하는 산소 결핍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발작, 혼수, 마비 등의 증상을 보이고 치료 후에도 기억상실, 마비, 말초신경병 등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 의료진 등에 따르면 병원 이송 직후 학생들의 체내 일산화탄소 농도는 25~45%로 정상 수치(3% 미만)보다 10배 정도 높았다. 임 교수는 “중독된 환자 중에는 치료가 잘 된 경우도 있지만 후유증이 발생한 경우도 종종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장기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일산화탄소 중독 치료에 필수적인 고압산소치료기가 공공병원에도 갖춰지지 않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사고에서도 학생 2명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가 고압산소치료실을 찾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옮겨지기까지 2시간 30여분이나 걸렸다. 임 교수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공공의료시설 비율이 굉장히 낮다”면서 “국민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 지역별로 균형 있게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1차 현장 감식에서 어긋난 가스보일러 연통 사이로 다량의 연기가 새는 것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사고 직후 경찰은 1.5m 높이에 설치된 가스보일러와 배기구를 연결하는 연통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채 어긋나 있는 것을 확인했다. 불완전 연소돼 일산화탄소를 다량 포함한 연기가 연통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펜션 실내로 들어와 잠자던 학생들이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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