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 학생 7명 강릉 치료시설서 다 수용 못해 2명 원주 이송
세종ㆍ울산ㆍ전북 고압산소치료기관 ‘0’… 대형화재 땐 속수무책
강릉 펜션 사고로 중상을 입은 서울 대성고 학생들이 고압산소치료가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을 찾아 100㎞ 이상 이동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의료 인프라 미비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크고 작은 화재 발생으로 일산화탄소(CO) 중독 환자가 발생할 경우 적기 치료가 필수적이지만, 검증된 고압산소치료 시설을 갖춘 응급의료기관은 손에 꼽기 때문이다.
19일 강원 강릉소방서 등에 따르면 전날 펜션 사고로 부상을 입은 학생 7명은 각각 강릉동인병원(2명), 강릉아산병원(5명)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동인병원으로 간 2명은 이곳에서 간단한 응급치료만 받은 뒤 다시 120㎞ 거리의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옮겨져야 했다. 동인병원에 고압산소치료 시설이 없었던 데다, 아산병원은 다인실 고압산소치료 시설을 갖추고는 있으나 7명을 전부 수용하기엔 치료 지연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고압산소치료는 환자가 2시간 안팎 동안 특수 캡슐에 들어가 100% 농도의 산소를 마시도록 해 혈액 속 헤모글로빈에 붙어있는 일산화탄소를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학생 2명은 다행히 헬기로 이송돼 이동 시간이 줄긴 했지만, 기독병원 도착 시간은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에게 발견된 때로부터 약 2시간이 지난 오후 3시6분이었다. 임상실험 결과 상 고압산소치료는 24시간 내 받으면 효과를 내는데, 빨리 받으면 받을수록 회복 속도가 빠르고 합병증 발병 확률이 줄어든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에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기관은 26곳뿐이다. 전체 응급의료기관(416개소)의 6% 수준이다. 17개 시도 가운데 강원을 비롯해 서울ㆍ부산ㆍ충남ㆍ경남ㆍ제주에 각각 3개소가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고, 경기ㆍ광주ㆍ대구 같은 대도시에도 고압산소치료 시설을 갖춘 곳은 1개소뿐이다. 세종ㆍ울산ㆍ전북은 아예 1곳도 설치돼 있지 않다. 응급의료기관 필수 설치 기기가 아닌 데다 기기 값도 비싸다는 게 주요 이유다.
이 때문에 가스누출 사고로 위급한 환자가 100㎞가 넘는 거리를 오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세종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환자 20명 중 5명이 200㎞ 가까이 떨어진 대구까지 이송됐다. 세종에는 응급의료기관 자체가 없어 환자 대부분이 대전ㆍ충남ㆍ충북 등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들 병원에도 고압산소치료 시설이 없거나 설치됐더라도 충분치 않아 환자를 추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수원 매산동 한 상가건물 화재 현장에서 유독가스를 흡입해 쓰러진 채 발견된 김모(17)양도 100㎞ 거리의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에 이송되고 난 뒤에야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소방ㆍ의료 현장에서도 고압산소치료기관이 부족한 데 대해 불만이 적지 않다. 경기의 한 소방 관계자는 “기기가 워낙 비싸 모든 응급의료기관에 설치하기는 힘들겠지만 지금보다는 수가 늘어야 한다”며 “대형 화재 사고가 나서 부상자는 많은데 수용이 안 될 경우 큰 인명피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곽영호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특히 연탄 사용 비중이 높고 화재 위험이 높은 공단 등 시설이 많은 지역에는 관련 기기 수요가 많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강릉=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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