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초 잠적한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미국 망명을 원하고 있으며 현재 이탈리아 정보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라레푸블리카’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매체와 인터뷰한 이탈리아의 한 외교 소식통은 “조성길 대사대리가 미국으로의 망명을 기다리는 동안 이탈리아 정보기관에 도움과 보호를 요청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외교부는 앞서 3일 조성길 대사대리의 잠적 소식을 알고 있지 못하고, 망명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보호하고 있지도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라레푸블리카는 북한 대사관을 이탈한 조 대사대리가 11월 중순 이탈리아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이후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정보당국 수장들이 조 대사대리의 신병과 관련해 미국과 은밀하게 협의해 왔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양국 정부가 조 대사대리의 이탈과 잠적 사실을 숨기고 논의해 온 것은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또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번 사건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미국 입장에서 협상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조 대사대리와 자주 교류했다고 밝힌 안토니오 라치 전 이탈리아 상원의원은 라레푸블리카와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등에 “그가 자국(북한)을 버릴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라치 의원은 “그는 자국 사랑이 대단했고, 자국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이들에게는 불쾌한 태도를 보였다”고 회고했다. 라치 전 의원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보수 정당 전진이탈리아(FI) 소속으로 지난 정부까지 상원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방 언론은 전날 한국 방송에 출연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발언을 인용해 조 대사대리가 북한 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북한과 관련한 핵심 정보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태 전 공사는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은 로마에 있는 세계식량계획(WFP) 본부와 연간 협상을 벌이면서 지원을 받는 곳이자, 북한 엘리트 계층에 사치품을 공급하는 장소였다”라며 “조 대사대리가 이런 업무에 연관돼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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