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요원,외주 보안업체 직원… 폭력환자 제압 권한 전무
전기충격기ㆍ삼단봉 있어도 실제 상황서 사용하긴 ‘무리’
병원들 사태 발생시 안전요원 권한 어디까지 부여할지 고심
살인 등 극한 상황서 사태해결 할 수 있는 ‘권한’ 부여 필요
“긴급 상황입니다. 진료실에서 비상벨을 눌렀네요.”
지난 8일 서울 강북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진료실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현관에서 근무하던 안전요원 임모(43)씨가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하니 아직도 환자의 고함이 들려왔다.
진료실 안쪽에선 환자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면서 “내가 왜 입원을 해야 하나. 나는 정상이야”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환자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40대 남성 환자. 증세 악화로 자ㆍ타해 위협이 있어 의사가 입원치료를 권유하자 난동을 부린 것이다. 가까스로 환자를 데리고 나와 귀가시킨 임씨는 “임세원 교수 피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초긴장 상태”라며 “의자를 의사에게 던지거나, 흉기를 휘두를 경우 안전요원이 어디까지 관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임세원 교수가 진료 중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주요 병원들이 원내 보안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환자의 폭력을 1차로 제압해야 할 안전요원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폭력상황이 발생했을 때 환자를 물리적으로 제압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외주 보안업체 소속인 안전요원들은 폭력 사태 발생시 의료진과 다른 환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것이 최우선 임무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기 전까지 현실적으로 전기충격기 같은 진압장비로 환자폭력을 저지하기 어렵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안전요원이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는 의료진과 환자를 대신해 몸으로 저지하는 일이다. 안전요원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병원 측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지난 3일 방검조끼와 삼단봉, 전기충격기 등 진압장비를 착용한 안전요원을 응급실 등에 배치한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에게 안정감을 주고, 난동 잠재자들에게는 일종의 엄포를 주는 예방적 효과를 기대하기 위한 조치”라며 “실제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안전요원들이 병원 내 폭력사태에 소극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민·형사적 책임문제 때문이다. 환자나 보호자가 ‘과잉대응’을 문제 삼아 경찰에 신고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면 외주업체 직원인 안전요원은‘덤터기’를 쓸 수밖에 없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의 안전요원인 정모(38)씨는 “정신과 외래 대기실에서 부모와 실랑이를 벌이던 환자가 발로 부모를 걷어차고, 정수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려 할 수 없이 물리적으로 환자를 제압한 일이 있다”면서 “사건 이후 오히려 환자 측에서 양 팔에 멍이 들고, 목이 아프다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며 씁쓸해 했다.
병원들은 살인에 준하는 폭력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진압장비 사용 등 안전요원이 물리적으로 저지를 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정석 건국대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대기실에서 ‘다 죽인다’고 뛰어다니는 일은 다반사”라며 “극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안전요원들이 적극적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료기관 내에서는 어떠한 폭력도 용납할 수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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