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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천주교 “낙태죄, 여성 처벌은 폐지 가능”… 형법 개정에 첫 긍정적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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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천주교 “낙태죄, 여성 처벌은 폐지 가능”… 형법 개정에 첫 긍정적 반응

입력
2019.02.18 16:03
수정
2019.02.19 13:4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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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처벌 조항은 유지 주장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개변론을 앞두고 2018년 5월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심현철기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개변론을 앞두고 2018년 5월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심현철기자

천주교 생명운동본부가 여성에 한해 형법상 낙태죄 처벌조항폐지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에 대한 처벌 조항은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동안 인공임신중절(낙태) 합법화에 줄곧 반대 입장을 유지해 온 천주교 측에서 제한적이나마 형법 개정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법재판소가 진행 중인낙태죄 위헌 여부 심판의 선고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천주교 측의 입장이 변화돼 주목된다.

천주교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 산하 단체인 생명운동본부는 18일 본보에 보낸 입장문에서 “여성의 죄를 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반면 의료진 처벌 조항은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형법 제 269, 270조는 각각 낙태한 여성과 시술한 의료진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중 269조의 폐지에 대해서만 긍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생명운동본부는 정부가 합법적 낙태 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던 1970년부터 천주교계의 대응 논리를 개발해온 기구다. 이번 입장문은 주교회의의 공식입장은 아니지만 주교회의의 생명윤리 연구·교육·홍보를 전담하는 가정과생명위원회의 위원장인 이성효 주교의 검수를 거쳤다.

입장문은 “태아도 엄연한 인간생명이며 결국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라면서 ‘낙태는 죄’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의사에 대한 처벌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다만 여성의 경우 이미 임신한 순간부터 낙태를 결정하고 실행하기까지 사회경제적, 개인적 고통과 부담이 크니 형법으로 처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천주교 측은 특히 여성 처벌하는 조항이 낙태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차희제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은 “여론형성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처벌이 부각되면서 여성들이 낙태를 생명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라면서 “그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달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만15~44세 여성의 75%가 형법 개정 필요성에 동의했는데 그 중 66%가 “인공임신중절 시 여성만 처벌하기 때문”을 이유(최다 응답)로 꼽았다.

생명운동본부는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 허용 기준을 ‘사회경제적 사유’까지 확대하자는 여성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임신 12주까지는 임산부의 뜻대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낙태 자유화를 의미한다”라고 반대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양육비와 교육비 지원 △미혼모 시설 확충 △인공임신중절 상담기구 설치 등 여성에 대한 심리적, 경제적 지원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동시에 남성에게도 양육 책임을 부여하고, 남성이 양육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먼저 여성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되, 남성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처벌조항을 삭제하더라도 의료진에 대한 처벌을 유지할 경우 여성이 제대로 된 낙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의료진도 낙태 시술을 기피해 ‘안전한 낙태’를 하지 못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의료계와 여성계의 입장이다.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은 대상이 누구든 처벌은 해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을 돕는 것은 의료인의 의무이며, 세계보건기구(WHO)도 여성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이 의사의 개인적 신념보다 우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윤 위원장은 “출산·보육지원은 당연히 확대돼야 하지만 그럼에도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의 결정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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