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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스토리]한국기원의 ‘무리수’, 문체부에 억대 여자프로바둑리그 운영 예산 요청

입력
2019.02.23 04:40
수정
2019.02.2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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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문체부에 프로 기전인 ‘한국여자바둑리그’ 운영 기금 2억6,000만원 신청 

 상업성 프로스포츠인 여자바둑리그에 문체부 예산 집행 관련, 부정적 시각 대두 

 예산 전용될 경우, 올해 어린이 바둑대회 개최 등은 사실상 어려워…바둑 대중화에도 ‘역효과’ 

지난해 11월,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2018 엠디엠 한국여자바둑리그’ 참가팀 감독들이 선수 선발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지난해 11월,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2018 엠디엠 한국여자바둑리그’ 참가팀 감독들이 선수 선발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한국기원이 프로바둑 기전 운영에 필요한 억대 예산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특정 여자프로바둑대회 후원만을 위해 이례적으로 당초 목적과 지난해 예산 규모까지 넘어선 한국기원의 이번 요청에 대해 바둑계 내부에서조차 무리수란 지적이 나온다.

23일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한국기원은 최근 프로선수들의 기전인 한국여자바둑리그 운영 예산 명목으로 문체부에 2억6,000만원을 요구했다. 한국기원이 여자바둑리그의 후원사 찾기에 실패하면서 급기야 문체부에 ‘긴급조난구조요청’(SOS) 신호를 보낸 것.

배경은 이렇다. 지난해 말 터졌던 김성룡(43) 9단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사태 여파로 물러난 당시 홍석현 한국기원 총재의 사퇴 시점에 맞물려 2015년부터 개최됐던 ‘엠디엠 한국여자바둑리그’ 후원사도 계약 연장을 중단했다. 이에 조상호 위원장과 김영삼 사무총장 등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들어간 한국기원측은 여자바둑리그의 후임 후원사 물색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자, 결국 문체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예년 같으면, 이미 참가팀 선수 선발과 감독 선임 등을 포함해 공개됐어야 할 여자바둑리그는 현재 후원사 미정으로 멈춰선 상태다. 최근까지 롯데그룹측과 여자바둑리그 후원사 협의를 논의했지만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에선 2017년 22억5,000만원으로 책정했던 바둑 분야 예산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아마추어 위주의 대한바둑협회에 16억원, 프로 중심의 한국기원에 16억원씩 각각 배정하면서 확대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한국기원측에서 처음엔 애매하게 여자바둑대회 명목으로 예산을 신청해 왔다”며 “프로와 아마추어에 따로따로 예산이 배분된 상황에서 불분명한 성격의 대회에 예산 지출은 곤란하다고 하니까, 한국기원측이 다시 여자프로바둑리그 대회에만 예산을 쓰겠다고 해서 현재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둑계 안팎에선 한국기원측의 이런 행보로 돌아오게 될 부메랑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다. 당장, 점쳐진 부작용은 크게 2가지다. 우선, 이미 프로스포츠로 각인된 여자바둑리그에 문체부의 예산 집행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하다. 문체부 예산으로 프로 선수들의 기전인 여자바둑리그가 개최된다면, 상업성 강한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등의 후원에 문체부 예산이 들어가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미 대중화된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와 미약한 기반의 여자프로바둑을 비교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프로스포츠’란 공통분모는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예산 전용으로 바둑계 사각지대에서 불거질 유·무형적인 피해다. 한국기원에서 문체부에 여자프로바둑리그 운영에 쓰겠다며 신청한 예산의 당초 배정 목적은 ‘어린이와 여성 바둑 보급’이다. 지난해 이 목적으로 지출된 예산은 2억3,000만원으로, ‘영재발굴바둑대회’와 ‘어린이바둑축제’, ‘여성바둑교류전’(친선대회) 개최 등에 쓰였다. 한국기원측에선 지난해 이런 명목으로 사용됐던 예산에 올해는 3,000만원을 더 추가, 총 2억6,000만원으로 여자프로바둑리그 운영에 사용하겠다고 문체부에 요청한 상태다.

만약 한국기원의 요구대로 이 예산이 한국여자프로바둑리그에만 사용될 경우, 바둑 대중화의 토대가 될 올해 어린이 바둑대회 개최를 장담할 순 없다. 어린이 바둑 보급 등에 집행될 예산을 한국여자바둑리그에 먼저 사용하고 향후에 어린이 바둑대회 후원사를 찾아보겠다는 시나리오가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국여자바둑리그도 어려운 판에, 가뜩이나 인지도가 낮은 어린이 바둑대회의 후원사 찾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로바둑계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다. 한국기원 소속의 한 프로바둑 기사는 “당장 급하다고 해서 다른 곳에 배정된 문체부 예산을 가져다가 여자바둑리그에만 쓰겠다는 발상은 ‘독이 든 빵’을 먹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며 “비상대책위원회의 무능력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고 푸념했다. 여자프로바둑계 역시 부정적이다. 여자프로바둑리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한 여자프로바둑 기사는 “당초 목적과는 다르게 문체부 예산을 쓰게 된다면 내년에 다시 정부 예산을 지원 받는 데 어려울 수 있지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힘들겠지만 마지막까지 후원사를 찾아보는 게 수순이다”고 충고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도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기원측의 예산 요청이 최종적으로 수용된 건 아니다”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예산 집행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전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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