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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 실제 모델 “증시 작전 세력의 거액 부당이득… 실제가 영화 뺨 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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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 실제 모델 “증시 작전 세력의 거액 부당이득… 실제가 영화 뺨 치죠”

입력
2019.03.26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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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금감원 직원 모델 허승환 수석조사역 인터뷰 

20일 개봉한 영화 ‘돈’에서 한지철(배우 조우진)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수석검사역은 주식시장의 작전 세력을 뒤쫓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쇼박스 제공
20일 개봉한 영화 ‘돈’에서 한지철(배우 조우진)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수석검사역은 주식시장의 작전 세력을 뒤쫓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쇼박스 제공

“주식시장 작전 세력은 스크린 속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요주의 인물’이 현실에도 존재하죠.”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돈’(감독 박누리)은 매일 7조원대 거래대금이 오가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증권사 신입 직원 조일현(류준열 분)이 ‘작전 세력’을 이끄는 번호표(유지태)를 만나 부정한 방법으로 수십억원을 쓸어 담는 이야기다. 이들을 사냥개처럼 뒤쫓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소속 수석검사역 한지철(조우진)도 주요 등장인물이다. 요즘 이 영화는 개봉 닷새 만에 관객수 150만명을 기록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영화는 주식시장을 실제처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였다. 소수 주가조작 세력이 손 쉽게 거액을 버는 게 정말 가능할까. 영화 속 금감원 직원의 모델이 된 허승환(46) 금감원 수석조사역은 “그렇다”고 말한다. 2002년 금감원에 입사한 허 수석은 자본시장 조사ㆍ감독 업무를 8년간 담당했다. 2017년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실제 금감원 업무에 대해 제작진에 자문을 해 주기도 했다. 25일 그를 만나 영화와는 또 다른, 국내 주가조작의 현실을 들어 봤다.

 ◇짜고 치는 거래, 정말 있나 

영화에는 A증권사 직원이 B사 직원과 공모해 주가 변동성이 큰 ‘세 마녀의 날(주가지수선물ㆍ주가지수옵션ㆍ개별주식옵션의 만기가 겹치는 날)’을 틈타 특정 가격으로 파생상품을 거래하기로 약속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세 조종을 통해 차익을 남기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허 수석은 “사전에 공모해 특정 가격과 시기에 매매를 하는 ‘통정매매’는, 시장 가격을 왜곡해 일반투자자를 현혹시킬 목적이었다면 범죄가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A증권사와 B증권사가 짜고 C주식을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통정거래 하면 시장에선 이를 시세가 오른 것으로 오인한다. 주가가 올랐다고 여겨 제3자가 투자를 하면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 식이다.

영화 돈은 하루에만 7조원의 거래대금이 오가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이야기다. 쇼박스 제공
영화 돈은 하루에만 7조원의 거래대금이 오가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이야기다. 쇼박스 제공

 ◇공매도 세력도 존재하나 

영화의 작전 세력은 몇몇 기업을 공매도 대상으로 정하고, 주가 하락 예정일에 맞춰 주가를 끌어내리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허 수석은 “허위성 호재를 유포해 주가를 띄우는 게 전통적인 주가조작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고의로 주가를 떨어트려 이익을 챙기는 공매도 세력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공매도 세력은 주로 외국계 자본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작전 세력과 연루된 초대형 투자은행(IB) 소속 애널리스트가 고의로 특정 기업에 부정적 보고서를 작성하고, 주가를 떨어트리는 사례 등이 알려져 있다.

허 수석은 “국내에서도 공매도 시세조종 사례가 적발되고 있긴 하지만 영화처럼 주가를 떨어트리려 공장에 불을 지르거나 임원을 살해하는 등 극단적인 범죄 행태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감원 직원이 현장 잠복근무? 

영화 속 금감원 직원은 범죄 혐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가고, 불철주야 주변을 맴돌며 감시한다. 허 수석은 “그런 방식이 일반적이지는 않다”며 “실제론 먼저 증거자료를 모은 뒤 출석요구를 해 금감원에서 당사자를 문답조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면 금융위원회의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수사기관에 통보하거나 고발하는 구조다. 다만 올해부터는 금감원 직원에게 금융범죄 수사권을 부여하는 ‘특별사법경찰관’ 제도가 본격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금감원 직원도 일정 범위에선 경찰처럼 강제 수사가 가능할 전망이다.

허 수석은 “자본시장 규모가 큰 미국은 증권 관련 범죄를 엄하게 처벌하는데, 국내에서는 비교적 관대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 피해가 불특정 다수로 분산되는 탓에 금융범죄가 사기라는 인식이 크지 않지만, 실제로 주가조작에 의한 개인투자자의 피해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림 3올해 금감원 직원이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지명되면 경찰처럼 강제 수사권을 동원해 금융범죄를 소통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쇼박스 제공
그림 3올해 금감원 직원이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지명되면 경찰처럼 강제 수사권을 동원해 금융범죄를 소통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쇼박스 제공

 ◇주식거래, 24시간 금감원에 보고될까 

영화를 보면 금감원 자본시장조사국의 대형 모니터에 주식시장의 이상거래가 실시간으로 포착된다. 그러나 실제론 한국거래소가 1차적으로 증시 거래 현황을 실시간으로 챙긴다. 거래소가 이상거래 중 불공정거래로 의심되는 건을 금감원에 이첩하면, 금감원이 보다 자세히 조사하는 체계다.

허 수석은 “금감원에도 자체 불공정거래 조사시스템이 있지만 시장감시 기능보단 범죄 혐의를 잡아 증거자료와 함께 수사기관에 보내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스스로 인지한 기획 조사를 하는 것도 주요 임무다. 금감원 내에는 현재 조사기획국ㆍ자본시장조사국ㆍ특별조사국 소속 직원 40여명이 자본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 도피 범죄수익금 찾을 방법은 

영화 속 작전 세력이 손에 넣은 검은 돈은 자금세탁방지 비협조국가인 바하마 소재 은행 계좌로 흘러 들어간다. 국내 은행에 보관했다간 수사를 받을 경우 손쉽게 환수될 수 있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한 곳으로 빼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개인이 해외로 거액의 돈을 송금하려면 외국환관리법에 따라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기에 송금 자체가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설령 해외로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및 국가 간 공조를 통해 범죄수익을 환수하고 있다. 다만 국가 간 협조가 제한되는 곳들의 경우 환수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금감원에서 자본시장을 감시ㆍ감독하는 직원 규모는 40여명 수준으로, 한국거래소ㆍ수사기관과 협력해 불공정거래를 조사하고 있다. 쇼박스 제공
금감원에서 자본시장을 감시ㆍ감독하는 직원 규모는 40여명 수준으로, 한국거래소ㆍ수사기관과 협력해 불공정거래를 조사하고 있다.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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