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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갈등과 대면하기를 회피하는 청와대

입력
2019.03.20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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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과 지지율에 취해 개혁 놓친 靑 

 수구 때문에 개혁 안 된다는 건 변명 

 갈등 조정ㆍ해결 위한 겸손함 필요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나쁜 국면이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탄핵 이후 처음으로 30%를 넘으면서, 더불어민주당과의 격차가 한 자릿수로 좁아졌다. 며칠 전 한국갤럽 조사에선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에 대한 긍정적 답변이 취임 이후 최저치인 44%로 떨어졌다. 부정 답변은 46%였다. 앞으로 더 안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 운영이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청와대의 국정운영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여당이 우물쭈물 끌려가는 것이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사회적 갈등이 많아서, 또는 수구꼴통이나 ‘조중동’ 때문에 정부 운영이 어려운 것일까? 노무현 정부 때라면 그렇게 분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한국당이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조짐도 있다. 그러나 촛불 이후에는 국정 실패를 더 이상 수구나 적폐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 중도층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보수층도 촛불에 참여했고, 따라서 현 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기여했으니까. 그래서 아직도 여권에서 나오는 한국당 때문에 개혁입법을 할 수 없다는 불만은 옹졸하게 보인다. 정부는 초반에 70~80%의 지지율을 누렸고 그 힘으로 야당을 설득하면서 개혁입법을 완성해야 했다. 또 최소한 한국당보다는 개혁적인 다른 야당들과 정치적으로 협력하면서, 개혁을 적극 실행해야 했다. 좋은 때는 사라졌다.

따라서 단순히 사회 갈등 때문에 정부가 어려운 건 아니다. 현재 사회에서 갈등은 당연히 존재하며, 정치의 핵심은 바로 그 갈등과 대면하고 그것을 조정하는 데 있다. 오히려 문제는 사회 갈등에 대응하는 청와대의 방식에 있다. 커다란 갈등을 야기하는 의제나 문제들 앞에서 청와대가 정말 그 갈등을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다루는 태도를 보여주었는가? 아니면 거꾸로 자신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갈등을 해석하거나 그것과의 진지한 대면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는가? 애초에 촛불이 이질적인 이해관계들의 집합이기에 차분하게 대응해야 했는데도, 청와대는 자신이 촛불의 대표자라며 자만했다. 초반엔 감동이었던 대통령의 겸손이 왜 효력을 잃어갔을까? “청문회에서 많이 시달린 분들이 더 일을 잘 한다”고 굳이 말하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장관 후보자들에게 임명장을 주어야 했을까? 지지했던 사람들도 놀라고 실망했다.

사회 갈등들이 튀어나올 때 청와대는 희망만 이야기하는 대신에, 그것과 정면으로 대면하며 문제를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거꾸로 갈등을 덮거나 그것과 대면하기를 회피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갈등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다루지 못한 채 선한 의지를 강조해 보았자, 도움이 안 된다. 중요한 경제정책이 보수에 의해 비판을 받으면 당당하게 해명해야 했고, ‘비정규직 제로’라는 약속이 지켜지기 힘들면 충분히 설명해야 했으며, 화력발전소도 줄이지 못하고 신재생에너지도 쉽지 않은 상태에서 탈원전이 어떻게 가능할지 설득해야 했다. 미세먼지 대책에 대해서도 더 책임 있게 설명해야 했고, 교육 현장의 갈등과도 개혁적으로 대면하고 더 책임을 통감해야 했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청와대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했다. 그랬다면 보수가 쉽게 대통령을 비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갈등을 덮거나 회피하는 청와대의 방식이 지속되면서, 그나마 정부의 좋은 성과인 평화정책조차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핵을 완성한 북한이 결코 대가 없이는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또 미국의 진보 정당인 민주당조차 북한의 태도를 믿지 않고 대북 제재를 유지하려는 상태에서, 청와대는 비핵화만 되면 모든 게 풀릴 거라는 조급한 기대 속에서 거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청와대의 관심이 과도하게 비핵화에 쏠려 있으며 그 와중에 정부가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 이차적인 갈등을 낳고 있다. 갈등과 대면하고 그 과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가 정치적으로 필요한 겸손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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