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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엿장수 떡장수

입력
2019.03.2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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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통씩 특별한 상담 전화를 받는다. 자기 자식이 요리사를 지망하니 조언을 해 달라는 내용이다. 더러는 가까운 지인이 전화를 걸어온다.

“나, 요리사를 하려고 하는데 방법이 없을까.” “자식 말고 당신 본인이 한다고?”

내가 요리를 시작하던 옛날에는 요리사란 거의 고육책의 생계 방편이었다. 선배들의 다수는 “먹여 주고 재워 주니” 요리사가 되었다고도 했다. 이제는 대단히 특별하고 뭔가 신비로운 대상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유학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관련 직종의 유학생 송출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요리뿐 아니라 과자와 빵, 술, 심지어 치즈와 햄 기술자 유학도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셰프라고 지칭하는 요리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변화다. 하얗고 잘 다린 옷을 입고 음식을 만드는 일이 꽤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텔레비전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아예 연예인이 된 셰프들도 있다. 기획사 소속이라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무슨 메뉴를 짤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소속사 매니저가 하루에 다녀야 할 행사와 프로그램 진행에 대한 브리핑을 해 준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돈도 잘 벌고 유명해질 수 있는(있다고 믿는) 직업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연예인과 운동선수 같은 반열에 요리사가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요리사 지망 폭주의 이면에는 다르게 봐야할 중요한 이유도 있다. 삶의 방식이 변했다는 점이다. 요리사, 제빵사를 꿈꾸지만 유명해지는 것도 싫고 돈 잘 벌려고 선택하는 일도 아니다. 삶을 어떻게 꾸려갈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고른 일이다. 양복을 입고 지옥철을 타고 회의와 회식이 이어지는 직장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찾아낸 대안이다. 이렇게 이 세계에 뛰어들고,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꽤 있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이미 이들은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여름이나 겨울쯤, 어쩌면 봄 가을에도 가게를 장기간 닫는다. 재충전, 뭐 이런 이름으로 길고 긴 휴식을 갖는다. 그동안 새로운 메뉴도 찾고 기술도 연마한다. 본고장에 가서 배우기도 하고, 휴가차 닫은 가게를 연구소 삼아 공부한다. 적정 수입이라는 화두를 꺼낸 것도 이들이다. 무한정 더 벌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적 인간형에 대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미 깊은 워라밸의 세계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지만 권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자영업의 무덤이다. 레드오션, 블루오션? 그런 것도 없다. 모두 레드오션이다. 레드오션을 우리말로 옮기면 ‘피바다’다. 식당 동네에서 요새 화두는 ‘다음은 어디가 뜨지?’다. 경리단길, 해방촌, 망리단길, 익선동, 성수동. 그 다음은 어딘가 묻는다.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한때 흘러가는 유행 바람에 올라타서 한몫 잡으려는 야심가들까지 몰려온다. 묵묵히 한 자리에서 괜찮은 솜씨로 밥을 팔아서 먹고사는 소박한 욕망을 바라는 이들에게 언제 시련이 밀어닥칠지 알 수 없다. 전혀 뜰 것 같지 않은 동네가 갑자기 들썩거리며 돈 냄새를 맡은 승냥이떼들 같은 치들이 몰려온다. 소박한 가게는 쫓겨나고 뒤늦게 막차 타고 들어온 이들은 서커스장의 가설무대가 철거된 공터 같은 곳에 자신이 버려졌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요리는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 준다. 그러나 그것을 업으로 삼는 일은 다른 세계다. 십 년 전과 비교해 보라.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요리사가 되었으며, 또 식당이니 카페를 경영하고 있는지. 우스갯소리로 식당에 가면 빵집 주인이 손님이고, 빵집 가면 식당 주인이 손님이라고. 각자 바꿔 먹으면서 살고 있다는 말인데, 옛날 할머니 무릎에서 들었던 엿장수와 떡장수 이야기의 현대판 같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팔아 주어서 엿과 떡을 ‘완판’시켰는데, 남은 돈은 딱 한 닢이더라는.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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