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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꿈의 정의

입력
2019.03.2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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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의 내리기를 좋아한다. 정의를 내리면 삼라만상이 간단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작가는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다.’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정의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게 마련이다. 왜냐면 가치관이 바뀌고 사고가 성장하면서 틀에 맞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게는 어려서부터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정의가 있다. 그건 바로 ‘꿈의 정의’다. 내게 있어 꿈은 이런 것이다.

‘꿈이란 인생을 바치기에 아깝지 않은 신기루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늘 물어본다. 왜 하필 신기루냐고. 왜 신기루 따위에 인생을 걸어야 하냐고. 물론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다. 신기루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환영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울리는 은유라고 생각한다. 사막 한가운데서 목마름에 허덕일 때 지평선 너머에 보이는 신기루만큼 간절한 것이 있을까. 그곳에 있을 오아시스를 그리며 입에 고이는 침을 상상해 보라. 신기루 너머에 있을, 존재하지 않는 물은 현실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보다도 달고 시원하리라. 나에게 꿈은 그런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인생의 꿈을 꾼 시기는 군 복무 시절이다. 당시 나는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영화란 영화는 죄다 격파하고 시나리오를 게걸스럽게 섭렵하던 영화광이었다. 그런 내게 군대는 일종의 감옥이었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곳의 하루는 십 년과도 맞먹을 만큼 길고 고되다. 그곳은 영화는 고사하고 원하는 책조차 읽을 수 없는, 단절된 곳이다. 그곳에서 무려 2년 동안 영화의 꿈을 꿨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군대에서 평생 쓸 이야기를 모두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서 영화의 꿈은 철책 너머에 존재하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일종의 신기루였으니까. 그만큼 목말랐고 간절했으니까. 나는 꿈을 꾸기 위해 식사 시간을 반납했고 휴식 시간을 쪼개 아이디어를 써 내려갔다. 화장실에 갈 때도 아이디어 노트를 들고 갔으며 취침 시간이 오면 잠들기 직전까지 내가 만들 이야기를 꿈꿨다. 그렇게 언젠가 나타날 오아시스를 그리며 신기루를 좇았다. 그렇게 이야기가 하나둘 쌓여 갔고 내 실력도 조금씩 성장했다.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군대를 제대했고 얼마 후 첫 작품을 출간했다. 그것이 내 첫 번째 소설이자 영화인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다. 지나고 나니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이 오히려 그립기까지 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몇 권의 소설을 더 출간했고 군대에서 꿈꿨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꿈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늘 멋지고 완벽한 이야기를 꿈꾸지만 출간과 동시에 낡고 진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 또다시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이 몰려온다. 그리고 완벽한 이야기라는 신기루가 나에게 손짓한다. 로렐라이 절벽의 요정처럼 매혹적인 노래를 부르며. 그럼 나는 도달할 수 없는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걷기 시작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맑고 시원한 물을 상상하며.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것이 변한 걸 절감한다. 한때 갈증에 허덕이며 함께 사막을 걷던 친구들은 사라지고 탁하고 미적지근한 현실의 물을 마시며 안주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럴 때면 서글픔이 몰려온다. 어묵 하나에 술잔을 기울이며 꿈을 외치던 모습이 그립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내 친구들만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목마름에 울부짖으며 밤낮으로 달리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자본과 일자리가 아니라 신기루를 찾아 사막에 뛰어드는 꿈이 아닐까.

장용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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