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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한복판에 꽂힌 아이패드…첨단기술 입은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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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한복판에 꽂힌 아이패드…첨단기술 입은 아파트

입력
2019.04.11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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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 ‘더 패드’ 설계한 홍콩 건축가 제임스 로 

연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비즈니스베이에 완공될 예정인 ‘더 패드’. 애플의 아이팟처럼 6.5도 가량 비스듬하게 설계된 아파트이다. 제임스로사이버텍처 제공
연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비즈니스베이에 완공될 예정인 ‘더 패드’. 애플의 아이팟처럼 6.5도 가량 비스듬하게 설계된 아파트이다. 제임스로사이버텍처 제공

올해 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을 닮은 아파트 ‘더 패드(The Pad)’가 들어선다. 90%가량 완성된 건물은 충전기에 꽂힌 아이팟을 꼭 닮은 모양에 직각에서 6.5도 비스듬히 기울어져 서 있다. 26층짜리 건물로, 256가구가 입주한다.

아파트 내부에는 SF 영화에 나올 법한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주민들은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로 출입한다. 가구마다 설치되는 가상현실(VR) 벽에는 가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장소, 감상하고 싶은 예술 작품이 실시간으로 펼쳐진다. 벽이 거대한 화상 채팅 창이 되기도 한다. 거실과 주방 바닥은 턴테이블처럼 회전하고, 기분과 취향에 따라 거실 음악과 조명이 바뀐다. 욕실 거울도 첨단이다. 전자 거울 앞에 서면 체중, 혈압, 체온 등 건강 상태가 표시된다.

홍콩 건축가 제임스 로(49ㆍ제임스로사이버텍처 건축사무소 대표)의 작품이다. 영국 런던대학 바틀릿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첨단 기술과 건축을 결합하는 ‘사이버텍처(Cybertecture)’ 전문가다. 홍콩, 인도, 러시아, 중국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세미나 연사로 참석한 그를 만났다.

[저작권 한국일보] 검은 정장을 즐겨 입고, 첨단기술을 활용한 건축을 선보이는 홍콩 건축가 제임스 로는 건축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평가도 받는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가 열린 12일 서울 삼성동에서 ‘사이버텍처’를 설명하고 있는 제임스 로. 배우한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검은 정장을 즐겨 입고, 첨단기술을 활용한 건축을 선보이는 홍콩 건축가 제임스 로는 건축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평가도 받는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가 열린 12일 서울 삼성동에서 ‘사이버텍처’를 설명하고 있는 제임스 로. 배우한기자

로는 ‘더 패드’의 디자인을 비행 중에 떠올렸다. “비행기에서 아이팟을 쓰다가 건물도 하나의 전자기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외관은 아이팟처럼 만들고, 내부에는 다양한 첨단 기술을 넣었어요. 입주자들은 애플 스토어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듯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거예요.” 2007년 설계 공모 당시 아파트 이름은 지능(Intelligence)과 건물이라는 뜻의 패드(Pad)를 합한 ‘아이패드(I-Pad)’였다. 당시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노먼 포스터의 설계를 제치고 당선됐다. “당선된 뒤 애플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이패드 출시(2008년)를 앞두고 특허를 내야 하니 건물 이름을 바꿔달라고요. 흔쾌히 양보했죠.” 건물 공사는 2008년 금융 위기 때 중단됐다 2013년 재개됐다.

제임스 로가 설계한 사이버텍처 ‘에그’(왼쪽부터), ‘테크노스피어’, ‘더 캐피털’. 제임스로사이버텍처 제공
제임스 로가 설계한 사이버텍처 ‘에그’(왼쪽부터), ‘테크노스피어’, ‘더 캐피털’. 제임스로사이버텍처 제공

첨단 기술은 로가 건물에 남기는 지문과도 같다. 그가 설계한 인도 뭄바이의 ‘에그’(2010년)는 계란 모양의 타원형 유리 건물이다. 계란이 땅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듯한 디자인 곳곳에 생태를 고려한 첨단 기술을 심었다. 비스듬한 각도는 태양열 에너지를 흡수하기 좋은 각도다. 태양열 덕분에 일반 건물보다 에너지 효율이 20~30% 더 높다. 옥상에 심은 수십 그루의 야자수는 천연 냉각기 기능을 한다. 유리 지구본 모양의 ‘테크노스피어’(두바이ㆍ2015년)는 친환경 에너지 전력 시스템을 적용해 사용 전력의 80%를 자체 생산한다. ‘더 캐피털’(뭄바이ㆍ2014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봇 주차장이 있다.

로는 “미래엔 건축가의 역할이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강, 콘크리트, 유리 등 건물 외피에만 관심을 가지는 시대는 갔어요. 건축가는 공간 이용자와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지능적이고 스마트하게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단적인 예가 2017년 로가 설계한 홍콩의 ‘오포드 튜브 하우스’이다. 지름 2.5m, 길이 2.6m의 콘크리트 수도관 2개를 연결한 초소형 주거 공간으로, 건물 틈새나 고가 다리 아래, 옥상 등 건물을 짓기 어려운 공간에 뚝딱 설치할 수 있다. “공사 현장에 있는 수도관에 들어가 봤더니 집처럼 아늑하더라고요. 여기에도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폰으로 문을 열고 선반을 뒤집으면 식탁이 되는 최첨단 집으로 바꿔봤어요. 집 지을 땅이 없다고요? 건물 틈새에 ‘튜브 하우스’를 차곡차곡 쌓으면 되고, 다른 건물 옥상에 올려놔도 됩니다.” 튜브 하우스는 미국,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 일본 등으로 수출됐다.

제임스 로가 콘크리트 수도관을 활용해 만든 ‘오포드 튜브 하우스’. 제임스로사이버텍처 제공
제임스 로가 콘크리트 수도관을 활용해 만든 ‘오포드 튜브 하우스’. 제임스로사이버텍처 제공
제임스 로가 설계한 ‘오포드 튜브 하우스’는 주거난이 심각한 홍콩 곳곳에 150채 이상 만들어질 계획이다. 제임스로사이버텍처 제공
제임스 로가 설계한 ‘오포드 튜브 하우스’는 주거난이 심각한 홍콩 곳곳에 150채 이상 만들어질 계획이다. 제임스로사이버텍처 제공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와 협업해 인간다운 삶을 만드는 사람.” 사람 대신 기술이 건축하는 시대의 건축가에 대한 로의 정의다. “5년 안에 로봇이 건물을 만드는 시대, 공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이동하고 한 공간에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겁니다. 믿기지 않죠? 이미 저는 아내가 전화하면 붉은 조명이 켜지고, 장모님이 전화하면 형광등으로 바뀌고, TV가 제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집에 살고 있는 걸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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