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속도조절론’ 구체화 ‘연말시한 제시’ 김정은에 공 넘겨
볼턴 “文대통령 김정은과 만남 시도, 면밀 주시” 여지는 남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의 다면적인 협상 판 흔들기 전술에도 불구, 미국이 ‘속도조절론’을 고수하며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결단’을 촉구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징후’를 제시한 데 이어, 북한의 돌연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배제 요구도 우회적이지만 즉각 거부했다. 먼저 협상 판을 깨지는 않겠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원하는 ‘다른 계산법’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기존 ‘빅딜론’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볼턴 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3차 북미회담 개최 전에 미국이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징후”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진정한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면 3차 회담을 할 모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핵화를 향한 진전이 이뤄져 왔느냐’는 질문에는 “현 시점에선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톱다운 회담’이 재개되려면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사실상 북한에게 ‘비핵화 로드맵’ 제출을 촉구한 셈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일관되게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 상태(엔드 스테이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빅딜이 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당시 3차 북미회담 개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한 것 역시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볼턴 보좌관의 발언은 김 위원장이 지난 12일 시정연설에서 3차 북미회담 개최 시한을 연말로 제시한 데 대한 대응의 성격도 크다. 북한이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자, 시기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반박한 셈이다. 여기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이행하려면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으로 자신들에게 다가와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주장을 완곡하지만 분명히 거부하는 의미도 깔려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미 모두 상대편에 ‘공’이 가 있다고 여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북 강경파의 대표격인 볼턴 보좌관이 다시 전면에 등장한 시점 자체도 예사롭지 않다. 김 위원장이 공군부대 방문에 이어 전술 신무기 발사 현장을 방문했고 북한 외무성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맡고 있는 대북 협상 책임자의 교체를 공개 요구한 때라는 점에서다. 북한과 미국이 자칫 강대강 대치로 치닫거나 최소한 미국이 먼저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적다고 볼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볼턴 보좌관은 다른 관료들보다 3차 회담 개최에 더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볼턴 보좌관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얘기해보려고 시도하는 만큼 매우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4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한국 정부를 통해 미국이 빅딜로 간주할 만한 북한의 의사표시가 나올 경우 북미 직접대화가 재개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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