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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학하는 전두환

입력
2019.04.18 18:00
수정
2019.04.18 23: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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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2014)는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몸서리나게 증언한 장편소설이다. “저는 저의 고통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악몽을 꾸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2016년 강연에서 한 작가가 털어놓은 말이다. 문학은 본디 그런 것이다. 누군가 지우려 하는 것을 기어코 기억하는 것. 그러기 위해 누군가는 생을 던지는 것.

□ 생의 전부를 문학에 던진 거목 두 사람이 지난해 지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광장’을 쓴 최인훈 작가와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전 서울대 명예교수. 생의 마지막에 두 사람이 남긴 일화는 먹먹하다. “병상에 누우셔서 단어 한마디조차 제대로 발음하실 수 없게 되셨을 때 아버지는 힘겹게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캐릭터.’”(최 작가의 아들 윤구씨, 영결식에서) “이제 건강 좀 챙기시고 그만 쓰시라는 말에, 말년의 그에게서 돌아온 답은 이랬다. 나 보고 죽으라고 하나?”(김 전 교수 제자인 서영채 서울대 교수, 추도사에서) 문학은 때로 그렇게 거룩하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전씨는 2017년에 낸 회고록에서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는 말로 고인을 욕보였다. 전씨의 변호인은 최근 광주지법에서 열린 공판 준비기일에서 강변했다. “문학적 표현이었다.” 문학을 빌려 의견을 밝힌 것일 뿐, 구체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적시하지 않았으므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문학은 허용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진실과 정의에 침을 뱉는 것은 영원히 문학일 수 없다.

□ 대통령 재임 시절 전씨는 문화공보부 간행물납본실을 중심으로 문학과 출판을 극성스럽게 검열했다. 권력을 천년만년 누릴 욕심에 시인, 소설가들을 통제하고 탄압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문학 뒤에 숨으려 하다니, 현실은 종종 문학의 상상력을 압도한다. 지난 연말 문화부에 전화가 걸려 왔다. “20년 넘게 신춘문예 문을 두드리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잘 봐 달라는 말은 못합니다. 제가 보낸 시가 분실되지 않게 꼭 좀 살펴 주세요.” 누군가는 소용되지 않음에도 문학에 생을 걸고, 누군가는 제 소용만을 위해 문학을 모욕한다.

최문선 문화부 순수문화팀장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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