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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아는 엄마 기자] A형간염, 아이보다 어른이 더 걱정

입력
2019.05.11 13: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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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어린이날을 앞둔 며칠 간은 부랴부랴 이벤트 준비에 바빠진다. 강원도의 한 리조트에 숙박을 예약한 다음, 평소 아이가 갖고 싶어하던 선물에 말로 다하지 못한 얘기를 담은 손편지를 넣어 포장했다. 이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식이다. 평소 같으면 동해안이 가까우니 당연히 생선회를 선택했겠지만, 올해 유독 심상치 않은 A형간염 확산세가 마음에 걸렸다. 보건당국이 집계한 올 1월부터 4월 28일까지 A형간염 신고 건수는 3,59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7%나 늘었다. 작년 총 신고 건수(2,436명)를 이미 한참 뛰어넘은 수치다.

주로 혈액이나 성적 접촉으로 감염되는 B형, C형간염과 달리 A형간염은 수인성 전염병이다. 혈액이나 성 접촉으로도 걸릴 수 있지만, 국내 A형간염 환자들은 바이러스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 사람들간의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생 관리에 취약한 식당, 끓이거나 익히지 않은 날음식 등이 주요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쉽지만 이번 여행에선 생선회를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일반적으로 영유아와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 감염병에 취약하다. 면역력이 약해 전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A형간염은 반대다. 어른이 어린이보다 더 쉽게 걸리고, 더 많이 앓는다. 특히 6세 미만의 소아는 A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잠복기(15~50일)가 지난 뒤에도 약 70%가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이를 불현성 감염 또는 무증상 감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성인이 돼서 뒤늦게 A형간염에 걸리면 증상이 되레 심하게 나타난다. 의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이 바이러스의 면역시스템과 숙주인 인체의 면역시스템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생리작용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홍역이나 수두 같은 감염병도 대개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심하게 앓는다는 점에서 A형간염과 비슷하다.

이른바 ‘위생의 역설’도 어른이 A형간염에 더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던 과거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A형간염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됐다.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아이들은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지 않으니 당시엔 A형간염에 걸린 줄 모른 채 지나간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도 모르게 A형간염에 걸렸다 회복됐던 아이들은 자연적으로 A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가 몸 속에 생긴다. 시간이 흘러 그때 그 아이들은 50대가 넘었다. 보건당국의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어른들의 A형간염 항체 양성률은 97%를 훌쩍 넘는다.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10명 중 9명 이상이 체내에 A형간염 바이러스를 방어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보다 늦게 태어난 어른들이다.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성인들은 위생 상태가 크게 개선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A형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을 가능성이 높다. A형간염 백신이 1990년대 중반 개발됐으니 이들은 어릴 적 예방접종도 못했다. 그래서 A형간염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몸이 견뎌내기 쉽지 않다. 실제로 1970~1990년대 태어난 청년, 중장년층의 A형간염 항체 양성률은 적게는 10%대까지 뚝 떨어진다.

국내에 A형간염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이다. 현재 청소년 10명 중 4, 5명은 그래서 A형간염 항체를 갖고 있다. A형간염 백신이 국가예방접종에 포함되면서 무료로 맞을 수 있게 된 2015년 이후 출생한 아이들까지 어른이 되면 지금 같은 A형간염 유행 우려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다만 백신 접종 후 인체가 A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를 만들어 얻게 된 인공면역은 실제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항체가 생겨 형성되는 자연면역보다 대개 약하다. 백신을 맞아 생긴 항체는 10~20년 지나면 역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항체 양이 줄어 면역력을 발휘하는 강도가 약해진다는 뜻이다. 반면 병을 앓고 나서 생긴 항체는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력을 거의 평생 유지한다. 예방접종으로 다져진 요즘 아이들의 A형간염 면역력이 20년 넘어서까지 지속되는지 추적관찰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아이의 예방접종 기록을 확인했다. 국가예방접종 지정 전이었지만 다행히 맞혀 놓았다. 엄마 아빠만 주사 맞으면 된다는 사실로 아이의 올해 어린이날은 해피엔딩이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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