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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카드에 딜레마 깊어진 ‘식량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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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카드에 딜레마 깊어진 ‘식량 지원’

입력
2019.05.11 04:40
수정
2019.05.11 14:3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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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美 위압적 태도 변화’ 요구에도 시혜적 접근 택해 미사일 도발 불러

헛다리 짚은 韓美 발 빼기도 쉽지 않아… 당분간 ‘로키’로 지원 협의 전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쌀을 보내 북미와 남북 관계 개선의 기회를 마련하고 북한 비핵화를 견인해볼 심산이던 정부가 진퇴양난에 처했다. 북한이 시위하듯 4일과 9일 연거푸 미사일 추정 발사체를 쏴 올리면서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정부는 10일 대북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는 변화가 없다고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국민적 공감과 지지가 필요한 만큼 국민들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자기들이 핵 포기와 교환하기를 바라는 건 식량 지원 같은 시혜(施惠)가 아니라 상대방을 깔보고 항복을 요구하는 미국의 태도 변화라는 항의의 의미가 근래 미사일 도발에 담겨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ㆍ28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미국을 향해 ‘셈법을 바꾸라’는 근본적인 요구를 했는데, 식량 정도로 한미가 자기들의 태도를 누그러뜨리려고 하는 데 대해 북한이 상당한 불만을 가진 듯하다”고 짐작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도 “식량이나 받으려 비핵화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점을 미사일 발사를 통해 분명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식량 지원이라는 접근법 자체가 적합하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9일 북한이 쏴 올린 발사체의 정체가 위력이 강한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커졌고 사거리가 증가 추세인 데다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북한의 도발 수위가 계속 높아질 게 뻔해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선임분석관은 “9일 미사일 발사는 의도한 대로 상황이 안 돌아가고 있음에 불만을 품은 북한이 군사적 긴장감을 높여가는 두 번째 단추”라며 “점점 도발 수위를 높일 게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미국도 점차 대응 수위를 높여가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며 “누구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10년 내 최악이라는 북한의 식량 위기를 북미 대화 재개의 ‘모멘텀’(동력)으로 바꿔 전화위복을 노려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꼴인 한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받으려는 쪽의 거부 의사가 확실해진 것도 부담이거니와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게 식량을 퍼줄 이유가 없다’는 대북 강경론이 갈수록 득세하는 상황에서 보수 여론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이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김연철 통일부 장관 등 한국 정부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를 잇달아 만나고 한미 워킹그룹(실무협의체) 회의를 주재하는 등 한국 측과 분주하게 의견 교환을 하면서 공개 발언을 일절 삼간 것도 당혹감의 방증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당장 입장을 바꾸기도 어렵다.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동포애’를 강조하며 식량 지원 필요성을 역설한 상황에서 하루 만에 방침을 철회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식량 제공 논의를 마중물 삼아 소통 채널을 복원해 남북 교류ㆍ협력의 물꼬를 튼다는 계획도 수포로 돌리기 아깝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 정부 주도의 대북 식량 지원 외에 북한을 달랠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 급한 대로 김연철 장관이 분위기 조성에 나서볼 태세지만,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이날 취임 인사 겸 방문한 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보상이나 굴복으로 비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릴없이 한미는 당분간 여론을 관리하며 북한 반응을 살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주의 차원이지만 돕는다는 생색과 한미 양국의 공조가 요란할 경우 경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만큼 한미 협의도 당분간 ‘로키’(low-keyㆍ저강도)로 진행될 전망이다. 김동엽 교수는 “북미 관계와는 별개 트랙으로 북한을 지원해야 북한을 남북 대화로 끌어내고, 또 그 틀 속에서 북미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다”고 제언했다. 고유환 교수는 “북한이 원하는 건 식량 지원만 분리된 제한적 보상안이 아니다”라며 “북미 간에 돌파구를 여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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