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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류큐 제도(5.15)

입력
2019.05.1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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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종전 후 미 군사정부가 직접 통치하던 류큐 제도가 1972년 오늘 일본에 반환됐다. 위키피디아.
2차대전 종전 후 미 군사정부가 직접 통치하던 류큐 제도가 1972년 오늘 일본에 반환됐다. 위키피디아.

구글 맵을 열고 일본 남쪽 동중국해의 섬 오키나와를 찾은 뒤 조금씩 화면을 확대해보면 소금 결정이 맺히듯 크고 작은 화산섬과 산호섬 200여개가 점점이, 줄줄이 나타난다. 규슈 남단 가고시마 현에서 타이완까지 징검돌처럼, 부채꼴로 이어진 그 섬들을 통틀어 류큐(Ryukyu)제도(또는 열도)라 부른다. ‘류큐(琉球)’는 1429년 통일왕국으로 건국했다가 1879년 일본 제국에 무력으로 흡수되며 멸망한 류큐국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역사를 값지게 여기는 이들은 류큐제도란 말을 고집스레 쓰고, 반(反)야마토 민족주의의 원심력을 경계하는 국가권력은 본토 남서쪽 섬들이라는 건조한 의미의 ‘난세이(南西) 제도’라는 이름을 대체로 선호한다.

태평양전쟁의 사실상 마지막 전투였던 오키나와 전투의 참극으로 잘 알려진 바, 오키나와와 광의의 류큐인들은 일본 북쪽 끝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처럼 극단적인 지역차별을 겪어왔다. 종전 후 미국은 1945년 오키나와에 ‘류큐열도 미 군사정부’(45~50년, 이후 미 민간정부)를 두고 일본 본토와 별개로 그 지역을 직접 통치했다. 52년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서도 그 원칙을 따랐다.

봉건 군주들이 섬들을 나누어 지배하던 고대에서부터 통일왕국 건설 이후까지 때로는 중국에, 에도 막부 출범 이후엔 가고시마 거점의 사쓰마 번에 사실상 복속돼 조공을 바치면서도 류큐국(민족)으로서의 고유성과 정치ㆍ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해 온 섬 주민들이 전후 약 30년간 미국의 지배를 받은 셈이었다. 그러다 냉전에 따른 미국의 동북아 방위계획 등의 영향으로 미일 양국은 1967년 류큐제도를 일본에 반환키로 합의, 1972년 5월 15일 다시 일본 영토로 귀속시켰다. 일본 정부는 제도의 각 섬을 중국의 남ㆍ동중국해 방어 기지로 구축해 왔다. 섬들은 동중국해의 무인도 및 암초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분쟁 최전방이기도 하다.

류큐의 시민들은 오키나와가 미군기지화한 데 따른 양가감정에 더해, 섬들의 군사기지화에 반감을 품고 있다. 미약하나마 분리ㆍ독립 운동 조직도 있다. 오키나와 출신 시인 가와미쓰 신이치(1932~)는 1981년 ‘류큐공화사회헌법’ 구상이란 걸 밝히기도 했다. 국가가 아닌 공동체로서의 류큐공화사회를 열어, 군대 없는 평화의 땅, 인종ㆍ민족ㆍ국적ㆍ성별의 차별 없는 공화의 땅을 이룩하자는 제안이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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