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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조사?... 뒤집힌 표절 판정에 체면 구긴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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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조사?... 뒤집힌 표절 판정에 체면 구긴 서울대

입력
2019.05.19 14:41
수정
2019.05.19 19:3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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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문.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대 정문. 한국일보 자료사진

학교에선 표절이 아닌 것으로 판정했던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논문 2편이 관련 학회에서 표절로 인정되면서 서울대의 표절 조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다른 논문의 표절 행위로 징계위에 회부된 해당 교수에 대해서는 보다 강경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제의 논문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모(56) 교수가 한국비교문학회의 학회지 ‘비교문학’에 2013년에 실었던 ‘민족문학-세계문학론의 비판적 검토: 경쟁적 모델과 순환적 모델’과 2015년에 실었던 ‘김병철의 이입사 연구에 나타난 한국비교문학 연구방법론’. 학회 윤리위원회는 5개월가량 논문들을 검토한 끝에 ‘표절’로 결론을 내렸고, 학회 이사회는 박 교수에 대해 제명을 결정했다고 최근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같은 논문에 대해 앞서 서울대가 내린 결론은 반대였다. 지난해 9월 학교 내 연구부정행위를 조사하고 처리하는 기관인 연구진실성위원회(진실위)는 표절 제보가 접수된 박 교수 저작 20건 중 12편에 대해 표절을 인정했는데, 두 건의 논문은 표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2013년 논문은 ‘원저를 빠짐없이 밝히고 있다’, 2015년 논문은 ‘실증적 문헌 연구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선행 연구들을 다시 정리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문제의 두 논문은 간단한 검증에서도 표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비교문학회에 제보된 내용에 따르면 2013년 논문에는 2008년 박모씨가 ‘인문논총’에 실은 논문과 거의 일치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대목이 박 교수 논문 7쪽에 등장하는 ‘세계문학론’을 둘러싼 논란. 박 교수는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규정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함축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세계문학이 무엇인지 ‘누가’ 결정하는가? 그렇게 결정된 세계문학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세계문학이라고 했을 때 ‘어떤’ 문학을 말하며, ‘세계’라고 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세계인가? 그 ‘세계’를 정의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우리는 거기에 동의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하고 있는데, 이 대목은 박씨가 2008년 ‘인문논총’에 쓴 ‘‘세계를 읽는 방식: 세계문학론과 번역이론의 접점 읽어내기’ 3쪽의 서술과 동일하다.

2017년 서울대 박모 교수에 대한 표절 의혹 제기 당시 한 대학원생이 직접 작성한 제보 근거 자료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서울대 박모 교수에 대한 표절 의혹 제기 당시 한 대학원생이 직접 작성한 제보 근거 자료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에 따라 동료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진실위가 검증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인문대 A교수는 “표절로 인정되지 않은 논문은 당시 제보자가 시간이 부족해 상세하게 표절 근거를 밝히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증명 책임이 있는 진실위가 제보자에게 증명 의무를 떠맡긴 게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됐던 저작의 규모에 비해 조사위원이 턱없이 부족해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문대 소속 B교수는 “표절 1건 의혹이 제기되면 보통 3~5명이 조사를 담당한다. 박 교수 사건의 경우 20편에 대해 제보가 접수됐으니 단순히 계산하면 60~100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적은 조사 위원으로 ‘수사’는 하지 않고 ‘재판’만 한 게 아닌가 의구심마저 든다”고 밝혔다. 서울대 규정에 따르면 진실위는 표절 제보가 접수되고 3명 이내로 예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본조사위원회는 5인 이상으로 구성하게 돼있지만, 교수들이 동료에 대한 표절 심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구성에 애를 먹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작권 한국일보] 서울대 국문학과 박모 교수 표절 관련일지.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서울대 국문학과 박모 교수 표절 관련일지. 송정근 기자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문제가 된 해당 논문에 대해 “학교와 학회 간에 표절을 판정하는 기준이 달라 생긴 차이로 보인다”며 “당시 진실위는 박 교수가 ‘연구진실성 위반 정도가 중하다’고 결정을 내렸기에 ‘봐주기 조사’는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문제가 된 2건의 논문에 대한 재심에 대해서도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건의 논문에 대해 표절 판정을 받았던 박 교수는 현재 징계위에 회부된 상태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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