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면초가 놓인 한의사들의 항변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침 치료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강북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A씨는 요즘 심기가 편하지 않다. 최근 왼쪽 발목을 삐었다며 한의원을 찾은 50대 환자 때문이다. 발목이 심하게 부어 골절이 의심됐지만 환자는 통증이 심하다며 무조건 침을 놔 달라고 재촉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촬영을 하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침을 맞고 간 환자는 일주일 후 발목에 깁스를 하고 한의원을 찾아왔다. 환자는 “발목에 금이 간 줄도 모르고 침을 놓은 한의사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며 대기실에서 소란을 피웠다. A씨는 “한의원에서는 엑스레이 촬영을 할 수 없고 당신이 원해서 침을 놓은 것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A씨는 “가뜩이나 환자가 줄고 있는 마당에 이번 소란으로 한의원 문을 닫게 될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의사 반발, 법적 문제도 불사하는 한의사

시대에 뒤떨어진 치료법과 환자의 불신, 가격경쟁력까지 상실한 한의사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침과 뜸, 부항으로는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대형병원들에 맞설 수 없고, 주요 수입원이었던 한약도 가성비가 뛰어난 건강기능식품에 밀린 지 오래다. 한의사들은 “지금처럼 진맥이나 보고, 침을 놓고, 부항 뜨고, 한약만 지어서는 의료시장에서 퇴출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지난 13일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기자회견을 열고 혈액검사 활용과 엑스레이 사용운동을 본격 전개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한의협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이들이 엑스레이는 사용할 수 없다. 의료법에 따르면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진단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 관리책임자에서 한의사는 제외돼 있다.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도 의료기사에 대한 지도권을 의사와 치과의사에게만 허용한다. 현행 법체계에서 한의사는 진단의료장비를 진료가 아닌 연구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한의대에서 장비 사용법을 배우기는 하지만 실제 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혈액검사 결과를 진료에 활용하는 일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한의협은 2014년 ‘채혈을 통해 검사결과가 자동적으로 수치화돼 추출되는 혈액검사결과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한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에 근거해 혈액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의사들은 “현대의학적 검사(적혈구ㆍ백혈구 수치ㆍ간수치)는 불가능하고 어혈 모양, 점도 등 한방원리에 의한 검사에 국한해야 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실제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한의협의 엑스레이, 혈액검사 사용 확대 선언 발표 후 이틀 만인 15일 최혁용 한의협 회장을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 및 방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정훈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은 “무자격자인 한의사들이 진단의료장비를 사용하게 되면 안전문제, 특히 오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사용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보건복지부는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정영훈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과장은 “혈액검사는 몰라도 의료법상 한의사가 엑스레이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의ㆍ한ㆍ정 협의체를 가동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약 먹으면 간 나빠지는지 확인하자”

한의사들이 의사들의 거센 반발과 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진단의료장비 사용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육안과 환자상담만을 통해 질환 상태를 확인, 치료하는 기존 한방치료로는 환자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에서 목, 허리 디스크, 요통 등을 전문으로 치료하고 있는 한의사 B씨는 “엑스레이를 사용할 수 있으면 손상 부위를 정확히 파악해 침을 놓아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엑스레이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한방치료를 돕는 ‘눈’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의사들은 한약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도 진단의료장비 사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에서 알레르기 질환을 전문으로 치료하고 있는 한의사 C씨는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속설이 대중들에게 각인돼 한방치료가 외면당하고 있다”며 “혈액검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한약 투여 전과 후 환자의 간 수치를 확인할 수 있어 한약 안전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의사들이 직접 진단의료장비를 사용하려는 이유는 의학(양방)과의 협진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학과 협진을 하고 있는 한의대부속한방병원 교수들은 “환자들에게 의학과 협진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협진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귀띔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의대부속병원 병원장은 “협진이 이뤄지려면 의학과 한방 모두 상대가 하고 있는 의료행위를 이해해야 하는데 의사들은 한방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다”며 “의사들이 한의사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협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일 동국대일산한방병원장은 “한의사들이 진단의료장비를 사용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의료사고가 나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결국 진단의료장비를 활용하지 못하는 한의사들은 자연스럽게 의료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의사들은 진단의료장비를 사용할 수 없지만 의료법에서는 한의사가 의사를 고용해 진료과를 개설, 운영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한방병원 MRI 촬영 모습. 자생한방병원 제공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도 한의사들을 옥죄고 있다. 한방치료 중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침, 부황, 뜸 등에 국한돼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진료비 실태조사(2017년)에 따르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한의원은 56.1%, 한방병원은 31.4%로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 62.7%보다 낮았다. 반면 상급종합병원은 65.1%, 종합병원은 63.8%, 의원은 60.3%였다.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방의료이용실태조사(2017년)에서도 우선적으로 보험급여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45.7%로 가장 많았다. 초재승 한의협 보험이사는 “2000년대 초반 병원의 재활치료 분야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되자 한방병원 환자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중풍 등 뇌혈관계 질환 환자들이 발길을 끊었다”며 “시대에 맞춰 빠르게 한방수가를 개발하지 못한 점이 어려움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올 4월부터 추나요법에 건강보험이 적용됐고 올 10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이후부터는 한의사들도 좀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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