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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들은 낙제점 줬는데… 정부는 장밋빛 보고서 유엔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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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들은 낙제점 줬는데… 정부는 장밋빛 보고서 유엔 제출

입력
2019.05.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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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부, 장애인 권리협약 이행 ‘자화자찬’… 장애인 단체들 “열악한 현실 외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정부가 최근 장애인 권리증진 정책을 잘 이행하겠다는 장밋빛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보고서 제출 전 우리 정부의 장애인정책 이행 정도를 낙제점으로 평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보건복지부가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는 ‘장애인권리협약(CRPD) 2ㆍ3차 보고서’로 지난 3월 8일 냈다. 최근 공개된 보고서 전문을 보면, 정부는 국내 장애인 정책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이행을 낙관하고 있다. 예컨대 진주 방화ㆍ살인사건을 계기로 열악한 현실이 드러난 정신질환자 치료ㆍ재활 인프라에 대해서는 ‘정신장애인의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는 식으로 간략히 표현했다. 또 휠체어 탑승설비를 장착한 특별교통수단 지원의 경우, 법정 의무대수보다 운행대수가 많은 점(126%)을 강조해 총량 자체가 부족하다는 장애계와는 동떨어진 인식을 보였다. 반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대해선 정신장애인 인권 보호절차를 강화한 사례로 여러 단락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CRPD는 주거부터 교육ㆍ이동권ㆍ사생활 보호 등 삶의 모든 측면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원칙을 담은 국제협약으로 가입국 177곳은 4년마다 협약 이행상황을 기록한 국가보고서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출하고 심의를 받아야 한다.

장애계는 정부 보고서가 국내 장애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외면한 보고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말 국가인권위원회가 작성한‘CRPD 이행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단체들이 2014년 이후 정부의 CRPD 이행수준을 평가한 점수는 5점 만점 기준으로 평균 2.45점에 그쳤다. △CRPD 이행을 위한 준비(1.93점)를 비롯해 △자연재해에서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계획의 이행 수준(2.13점) 등 25가지 영역을 설문조사했다. 점수가 가장 높은 경우에도 3점을 못 넘어 정부의 장애인 권리 증진 노력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 조사는 지난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총연합회) 등 장애계 단체 23곳에 설문조사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이런 의견을 바탕으로 인권위는 지난 2월 복지부에 2ㆍ3차 보고서를 유엔 제출 전에 일부 수정하라고 의견표명을 했지만 말 그대로 ‘의견’에 그쳤다. 인권위는 서문에서부터‘주로 긍정적 부분과 성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협약 및 최종견해 이행의 문제점이나 현실적인 한계도 또한 함께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복지부에 권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계획이다, 추진 중이다” 등 모호한 표현을 줄이라고 요구했지만 대부분 수정 없이 제출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정부가 유엔 조사를 받아들이는 선택의정서 비준 의지를 보인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권고ㆍ수정 요청 40건 가운데 복지부가 받아들인 것은 6건뿐이어서 인권위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예산 등 상세한 내용 보완을 요구한 부분들이 최종 보고서에선 아예 삭제된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해 논란이 됐던 모자보건법 역시 강제불임시술 관련 조항 폐지를 요청했지만 언급 자체가 없었다.

장애계는 부정적 현실을 감춘 보고서로는 유엔으로부터 올바른 정책 제언을 받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소속 염형국 변호사는“한국이 관련 법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정비됐지만 실제 장애인의 삶은 후진국 수준”이라면서 “예컨대 정부는 공공기관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이 의무화됐다고 강조하지만 휠체어가 들어가는 편의점을 찾기가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용석 총연합회 정책홍보실장도 “장애아동 지원 문제를 지적하면, 선언적 의미가 큰 장애아동 복지지원법이 제정돼 괜찮다고 답변하는 식의 자화자찬 보고서”라면서 “장애계 34개 단체가 모여서 민간 보고서를 작성해 내년 초에 유엔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신용호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은 “정책 비판은 민간 단체들의 역할이고 양쪽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유엔이 심의하는 것”이라면서 “분량 제한이 있어 인권위나 장애계가 요구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 못한 측면도 있다”라고 해명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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