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5ㆍ18 명단 공개? 제사상 엎겠다는 거냐” 침통한 광주

알림

“5ㆍ18 명단 공개? 제사상 엎겠다는 거냐” 침통한 광주

입력
2019.05.17 16:30
수정
2019.05.17 18:59
3면
0 0

 “저들 꼼수에 넘어가면 안되는디” 보수단체 시위에 답답한 심정만 

[저작권 한국일보] 5ㆍ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 후문 앞에서 대학 구성원들이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들의 집회 개최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5ㆍ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 후문 앞에서 대학 구성원들이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들의 집회 개최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저들의 꼼수에 넘어가면 안 된디.” “긍게, 1980년 5월 그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정치적으로 광주를 ‘외로운 섬’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걸 알아야 쓸 것인디.”

17일 낮 12시40분쯤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 후문 인근의 한 국밥집. 반주 삼아 소줏잔을 기울이던 60대 초반 손님들의 새된 목소리가 떠다녔다. 이들의 말 속엔 아침부터 후문 앞에서 “5·18유공자 명단 까!”를 외치며 5ㆍ18 폄훼 집회를 열고 있는 보수단체들 때문에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이들의 대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자 김모(61)씨는 “세상에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가 5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곳이여. 생각 같아서는 콱,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어쩌겄소. 저것들도 품고 가야제”라고 쓴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하루 앞둔 광주는 애써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시민들은 하나 같이 “언제까지 5·18이 정치놀음에 휘둘려야 하냐”고 침통해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18 망언 의원 징계와 5·18역사왜곡처벌법 처리 등을 외면한 채 기념식에 참석하겠다고 한 데다, 보수단체들도 기념식 때 5·18민주묘지 등에서 5·18을 폄훼 집회를 열겠다고 나서면서다.

5ㆍ18 민주화운동 39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ㆍ18민주묘지 내 민주의 문 앞에서 5ㆍ18 유가족과 4ㆍ16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역사왜곡 근절과 진실 규명에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5ㆍ18 민주화운동 39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ㆍ18민주묘지 내 민주의 문 앞에서 5ㆍ18 유가족과 4ㆍ16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역사왜곡 근절과 진실 규명에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아무리 5·18이 싫어도 그렇지, 이 건 제삿날에 제사상을 엎겠다는 것이 아니면 뭡니까?” 이날 오후 5ㆍ18 전야제가 열린 동구 금남로를 찾은 신모(57)씨는 “5·18 때 집회를 하든 시위를 하든, 그건 자유지만 우익 순교자 코스프레를 하며 얻어터지려고 오는 건 5·18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5·18기념식은 5월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들과 광주시민들의 아픔을 끌어안아주는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신씨처럼 금남로와 5ㆍ18민주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저마다 울분을 토해냈다. 유족 이모(83)씨는 “보수세력들이 광주에서 물리적 충돌을 유발해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이 꼴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 사이에선 “보수단체가 집회를 강행한다면 분노한 광주시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실제 성난 민심은 5·18 사살 명령, 사망자 시신 소각 등 새로운 증언들이 터져나오면서 인내의 한계점에 다다른 듯 했다. 특히 보수단체들이 18일 오후 금남로 4가 집회에 당초 알려진 것보다 많은 회원 800여명을 동원할 것으로 알려져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하다”고 복잡한 속내를 비쳤다.

[저작권 한국일보]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 후문 앞에서 5ㆍ18유공자 명단 공개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 뒤 가두행진에 나서고 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 후문 앞에서 5ㆍ18유공자 명단 공개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 뒤 가두행진에 나서고 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이러다 보니, 시민들은 “물리적 충돌만큼은 피해야 한다. 감정에 동요하지 말고 이성적 판단과 절제된 언행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자”고 호소하고 나섰다. 이날 오후 전남대 후문 앞 집회 현장을 지켜보던 회사원 이모(55)씨는 보수단체 회원 100여명이 “(5ㆍ18유공자 명단을)까!”를 연호하며 인근 도로 1개 차로(2.5㎞)로 가두행진에 나서자 기가 막힌 표정으로 이내 자리를 떴다. “정말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꼴을 보고도 참아야 한다는 게 참….” ‘2019년 5월 광주’는 그렇게 또 하나의 응어리를 안고 있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