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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방치되는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

입력
2019.05.20 04:40
수정
2019.05.20 10:5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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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대학, 대형병원 등의 내부도로를 비롯한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는 현행 도로교통법 적용이 아니라서 사고에 명백한 책임이 있는 가해자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제도상 맹점이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들이 교통안전지도사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 서울시 제공
아파트 단지, 대학, 대형병원 등의 내부도로를 비롯한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는 현행 도로교통법 적용이 아니라서 사고에 명백한 책임이 있는 가해자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제도상 맹점이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들이 교통안전지도사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 서울시 제공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는 국민들이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모든 제도들이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때문에 제도의 미비점이 발생하면 발 빠르게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는 제도상 미비로 불합리한 피해가 발생하는 것에 관한 주요 사례가 될 수 있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법률상의 도로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통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함에도 가해자에 대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처벌이 어렵다. 아파트 단지, 대학, 대형병원 등의 내부도로에서 보행자가 차량에 치어 다쳤다 해도 가해자의 형사처벌은 면제가 되는 비현실적인 제도인 것이다.

자동차보험 통계에 의하면 이런 사고가 전체 교통사고의 16.4%를 차지한다. 이 중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보행자 사고는 연간 1만1,000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정부 공식 교통사고 통계에 포함되지 않고 있어, 교통안전 사각지대가 그대로 방치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1월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있었고 한 달 만에 참여인원이 20만 명을 넘어서 정부는 관련 법령을 개정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으며, 현재 제도 개선 방안이 논의 중이다.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로교통법 적용 대상을 공공도로뿐만 아니라 차량이 다니는 모든 통행로로 확대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다만 동시에 정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도로 등의 범위가 크게 늘어날 것이며, 지금도 행정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 시설 내부까지 관리 책임을 강제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도로교통법 적용 대상을 넓히기보다 도로교통법이 적용되지 않는 ‘도로 외 구역’에서 차량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의무 조항을 신설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는 방식으로 법률 개정안을 제시했다. 이렇게만 되어도 억울한 피해자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고, ‘도로 외 구역’에서 부주의한 운전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법 개정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고, 국회에서 곧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라는 소식만 들리고 있다. 그 사이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또 소중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빠른 개정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법 개정과 더불어 도로 외 구역이 보다 안전한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아파트, 대학, 병원 등의 대형 시설 내부의 도로 설계 및 운영 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새로 지어지는 신축 아파트의 경우 지상에 아예 차가 못 다니게 설계되어 차와 사람이 마주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 이처럼 전체 시설 설계 시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하여 설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도로 외 구역에서의 교통안전을 위해서는 가로(街路)설계 지침이 개발되어야 한다. 차량 속도를 줄이는 설계, 보행자의 안전한 도로 횡단을 담보할 수 있는 설계가 이뤄져야 하며, 현재 시행하고 있는 교통영향평가를 통해 도로에서 보행자 안전에 문제가 있는지 면밀하게 살피고 개선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다. 혹은 모든 공공 및 사적 도로 등의 공간에서 보행자의 안전과 쾌적한 이동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보행안전 영향평가 제도를 별도로 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도로의 주된 이용자는 차와 보행자다. 둘 중 보행자는 절대적 약자다. 하지만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약자를 보호하기보다 운전에 방해된다고 보행자에게 소리치거나 경적을 울리는 경우가 많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보행자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일뿐 아니라 우리 교통 문화를 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는 공식적 선언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우선하도록 관련 제도의 개정이 빨리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재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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