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운, 한반도에도 악재 되나… “미국, 동시 핵 갈등 대신 당분간 대북 관망”

8일 미국 플로리다주 파나마시티 비치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집회에 참석해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플로리다=AP 연합뉴스

미국의 대(對) 이란 강공이 중동에 불러온 전운(戰雲)의 그림자가 북미 간에 비핵화 협상이 진행 중인 한반도에까지 드리울 가능성은 당장 크지 않다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을 대하는 방식이 미국의 전통적 주적(主敵)인 이란과 사뭇 다르다는 데에 전문가들은 주목한다. 하지만 핵 폐기라는 목표까지 다를 수 없는 만큼, 본보기가 되리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일단 ‘트럼프 행정부에 이란은 이란이고 북한은 북한’이라는 게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서로 다른 별개 해법을 미국이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친(親)유대주의와 반(反)이란주의는 미 보수 진영의 뿌리깊은 성향이다. 2001년 집권한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는 이란 정권을 ‘공존 불가능한 정권’으로 상정하고 중동 정책의 틀을 짰다. 이스라엘의 로비가 2003년 이라크 전쟁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게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와 스티븐 월트가 공저 ‘이스라엘 로비’에서 내린 결론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트럼프 대통령 주변 핵심 참모들은 예전부터 이란을 지도에서 지워야 한다고 여겨 온 친이스라엘 복음주의 보수파다.

이런 종교정치적 기류에서 북한은 어느 정도 자유로운 게 사실이다. 국제사회 주요 국가들과의 합의대로 핵 개발을 중단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내에 머물고 있는 이란은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NPT체제 밖에서 핵ㆍ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해 온 북한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19일 “같은 핵 문제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이란 핵과 북한 핵은 별개 현안”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두드러지는 대이란 적개심이 역시 이상한 감정이지만 방향이 다른 대북 호의를 해치거나 거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치적(治績) 욕심도 북한을 이란과 떨어뜨려 놓는 변수일 수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협상을 통해 국제무대로 불러들인 이란을 다시 코너로 밀어 넣은 건 전임 대통령의 최대 업적을 하나씩 망가뜨려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 지우기’의 일환”이라며 “이란이 미국의 재협상 조건을 수용하고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인내’라며 방관한 북한의 비핵화가 가시화한다면 하나는 강고한 압박으로 하나는 끈질긴 회유로 재선 선거를 앞두고 21세기 최대 외교 성과라 홍보할 만한 자기만의 업적을 쌓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거시적 관점의 ‘신(新)냉전 전략’으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을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비핵화 협상으로 북한을 개방, 자국 패권 지도에 편입시킴으로써 신흥 패권 경쟁국인 중국의 도전으로부터 미국의 안보 이익을 지켜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반도 전체가 해주기를 미국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다만 당분간의 북미 협상 교착은 피하기 힘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이란 문제 해결이 당면 현안인 데다 아무래도 동시 핵 갈등은 부담스러운 만큼 얼마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상대로는 긴장 수위가 높아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면서 관망하는 태도를 취할 공산이 크다”며 “북한 역시 미국의 대이란 군사 공격 실행이나 이란의 대미 굴복 여부 등을 관찰하면서 신중하게 정세를 판단하는 시간을 가지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이란 핵 협정(포괄적공동행동계획ㆍJCPOA) 일방 파기가 북미 협상 타결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이 새 합의 조건으로 이란에 요구한 △핵 개발 중단이 아닌 핵 시설ㆍ프로그램 영구 폐기 △탄도미사일 개발 중단 △핵 사찰(검증) 강화 등이 향후 대북 협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조건이라는 점에서다. 영국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미국이 북한을 ‘제2의 이란’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 북미 정상회담으로 시작됐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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