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상에 정보 흘린 외교관 등 10여명, 한미정상 통화내용 회람 의혹 
 주무자 아닌데 어떻게 내용 봤나… 美 파견된 감찰팀 집중 조사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주미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유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외교부의 기강 해이가 범법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전례 없는 대형 보안 사고에 집권 여당이 24일 곧바로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하고, 한미 동맹 외교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등 파문이 점차 확산되는 양상이다.

정상 간 전화 통화 내용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3급 비밀로 분류된다. 주미대사관 내에서도 조윤제 대사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다뤄지는 정보다. 문제는 이런 정보를 직원 여러 명이 돌려봤을 가능성이다. 열람자가 10명이 넘는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해당 업무와 직접 연관된 직원이 대사가 전문을 본 뒤 열람하는 관행은 있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지만, 강 의원에게 정보를 흘린 강 의원의 고교 후배 K씨는 주무자가 아니다. 주미대사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외교관은 “사본을 만들어 비밀을 아무나 회람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며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지는 워싱턴에 파견된 외교부 감찰팀의 핵심 파악 대상 중 하나”라고 했다.

정보 유출의 고의 여부와 새나간 비밀의 경중도 K씨 행위의 위법성을 좌우하는 변수다. 일단 K씨는 7일 통화 내용 중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5월 방일 직후 잠깐 한국에 들러달라고 부탁했다는 대목이 그리 큰 비밀이 아니라는 오판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내용을 알려주지 않기 위해 사소한 내용을 대신 말해줬다는 게 그의 해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잠재해 있던 현 집권 세력의 외교 및 대북 정책 방향에 대한 전통적 외교부 주류 세력의 불만이 표출된 것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하기도 한다. 과거 정부 시절 잘 나갔던 이른바 ‘워싱턴 스쿨’ 출신들이 현 정부 들어 소외를 당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일부 인사가 불만을 품고 야당에 정보를 흘려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 미국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소신을 공공연히 밝힐 정도로 미 특유의 대북 불신에 경도된 외교관이 주미대사관에는 더러 있다”고 전했다.

정치적 배경이나 의도 유무와 무관하게 국가 기밀이 대사관 밖으로 누출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보안 사고라는 게 중론이다. 최근 외교부에는 해이해진 기강 탓으로 볼 법한 사건들이 많았다. 지난달 스페인과의 차관급 전략 대화 행사장에 구겨진 태극기를 세운 외교부 주무 과장이 보직 해임된 일이 대표적이다. 영문 보도자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국가 이름을 오기하는 실수도 잇달았다. 이달 초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와 도경환 주말레이시아 대사가 직원에 대한 ‘갑질’과 김영란법 위반 등 혐의로 줄줄이 소환되기도 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파장이 제법 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외교부는 추가 조사와 징계 절차 착수를 위해 내주 K씨를 귀국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외교부에서 발생한 일련의 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 왔다”며 전날 조현 전 1차관이 물러났지만, 주미대사는 물론 강경화 장관 책임론까지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세영 신임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취임식에서 “국가 기밀을 다루는 고위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기강 해이와 범법 행위”라며 “신속하고 엄중한 문책 조치와 재발 방지 노력을 통해 하루빨리 외교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 나가야 하겠다”고 당부했다.

청와대의 외교부 불신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을 시키면 기본적으로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다른 부처들과 달리 외교부는 안 된다는 말부터 하기 일쑤였다”며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임명된 뒤 그렇잖아도 많아진 ‘일 좀 잘하라’는 (외교부 보고에 대한 청와대의) 피드백이 더 많아지게 생겼다”고 했다. 나아가 미국과의 외교 소통에 지장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정상 간 통화 내용까지 유출되는 마당에 당국자 간 협의 내용이 흘러나가지 않는다는 신뢰를 미측에 줄 수 있겠냐는 게 일부의 걱정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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