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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세심한 맛] 맛있는 음식은 온도에 달렸다, 양고기는 더욱 그렇다

입력
2019.06.08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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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양고기는 거의 대부분이 생후 1년 이전의 어린 양이다. 양꼬치와 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2017년 양고기가 대중화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먹는 양고기는 거의 대부분이 생후 1년 이전의 어린 양이다. 양꼬치와 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2017년 양고기가 대중화됐다. 게티이미지뱅크

‘메리에게는 어린 양이 있어요 / 어리고 어린 양이 있어요 / 매리에게는 어린 양이 있어요 / 눈처럼 하얀 털을 지닌 양이 있어요.’ 우리에게도 친숙할 대표적인 영어 동요 ‘매리에게는 어린 양이 있어요(Mary had a little lamb)’는 1830년, 세라 조세파 헤일의 시로 처음 발표 되었다. 선율이 친근하고도 기억이 쉬운 덕분에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의문을 품는다. ‘작은 양(램 lamb)’은 결국 ‘역전 앞’ 같은 중복 표현이 아닐까? 영어에는 동물 전체와 유체 및 성체, 그 고기를 일컫는 단어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양이라면 동물은 통틀어 쉽(sheep), 생후 1년까지의 어린 양과 고기는 램(lamb)이다. 그보다 더 자란 것의 고기는 머튼(Mutton)이라 부른다. 

우리가 먹는 양고기는 거의 대부분이 램이다. 1년은 고사하고 생후 6개월 이전의 고기임을 내세우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래도 양고기는 꼬치에게 대중화를 빚졌다. 어향가지, 꿔바로우 등의 요리와 함께 양꼬치를 내는 중식당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직화구이의 형식으로 자리를 잡은 덕분이다. 마케팅 또한 아주 빈말은 아니었으니, 실제로 맥주와 잘 어울리는 짝으로서 맛의 경험 차원에서도 저변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이런 분위기에 탄력을 받아 가정에서도 구워 먹을 수 있는 고기로 마트 등에, 그것도 약간 얄궂게도 양의 해인 2017년에 본격 등장했다. 

양고기라면 무조건 램인가. 관심이 있다면 일단 풀어야 할 오해이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 흔히 말하는 ‘누린내’는 취향을 꽤 탄다. 그래서 어린 램을 먹어야 냄새도 적을뿐더러 육질도 부드러워 일석이조로 좋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본격적인 요리의 세계로 진입하지 않으려는 핑계로도 굉장히 유용한 주장이다. 자란 양의 고기, 즉 머튼이 걷는 나름의 길이 있으니 바로 숙성이다. 2, 3주쯤 숙성시켜 맛과 향을 키우는 한편 머튼의 단점이라는 뻣뻣함이 해소된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램을 먹는다고 해서 머튼이 먹지 못할 고기라고 인식하면 곤란하다. 

잘게 깍둑 썰어 굽는 양꼬치는 지글거리는 수준까지만 익혀서 먹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잘게 깍둑 썰어 굽는 양꼬치는 지글거리는 수준까지만 익혀서 먹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양고기는 미디엄 레어로 구워야 부드러워 

양고기 특유의 냄새는 지방에서 나온다. 살만 발라내서 시식을 하면 기름기가 적은 쇠고기와 구분을 못할 수준이다. 결국 모든 음식이 그렇듯이 지방이 개성을 결정짓는 셈이니 조리 또한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부위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양고기는 많이 익히면 질겨진다. 당연한 사실 아니냐고? 쇠고기라면 한국식 직화구이 같은 맥락에서 속까지 바짝 익더라도 웬만하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양고기는 맛이 없어지니 조금만 더 배려를 해서 내부 온도의 상한선을 조금 낮춰주는 게 좋다. 지방은 적당히 녹아 나오되 속까지 익지는 않는 미디엄 레어(54℃)와 미디엄(60℃) 사이이다. 다만 노파심에서 사족은 하나 달아야겠다. 이 온도는 순전히 요리와 맛의 관점에서만 본 수치일 뿐이니 노약자나 면역력이 약한 이라면 탈이 나지 않도록 완전히 익혀 먹을 것을 권한다. 

집에서 양고기를 익혀 먹고 싶다면 밖에서 먹는 양꼬치로 연습을 해보자. 잘게 깍뚝 썰어 꼬치에 꿰었으니 넙적하게 썰어 내는 일반 직화구이 고기와는 느낌도 접근도 사뭇 달리 한다. 꼬치에 꿴 고기 한 줄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라고 가정하고 지방이 녹아 나와 겉에서 지글거리는 수준까지만 익힌 뒤 2~3분 가량 식혔다가 맛을 본다. 각 조각이 잘기는 하지만 이에 크게 저항이 없고 씹을 때 고깃결이 조각조각 부스러지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면 잘 익힌 것이다. 한마디로 약간 덜 익혔나 싶을 정도로만 구워야 턱이 아프도록 질겅질겅 씹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요즘은 꼬치를 알아서 돌려 주는 자동 회전 장치가 대세인지라 손을 안 대고 구울 수 있는데, 편한 것 같지만 사실 과조리의 위험에 노출되는지라 관심은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 혹시라도 자동 장치가 없는 곳이라면 꼬치를 부챗살처럼 펼쳐 손에 쥐고 자주 뒤집어가며 굽는다. 

양의 어깨에서 배 앞까지 뼈가 붙은 갈빗살인 숄더랙은 54~60℃의 미디엄 레어로 구워 먹는 게 맛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양의 어깨에서 배 앞까지 뼈가 붙은 갈빗살인 숄더랙은 54~60℃의 미디엄 레어로 구워 먹는 게 맛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꼬치로 양고기 구이의 맛을 보았다면 다음 단계로는 숄더랙(shoulder rack)을 가지고 집에서 본격적인 조리를 시도할 수 있다. 이름처럼 앞다리가 붙은 어깨에서 배 앞까지의, 뼈가 붙은 갈빗살인 숄더랙은 마트에서도 살 수 있는 부위이다. 돼지로 치면 목살과 멀지 않은 부위인지라 서로 다른 근육이 모여 있음을 단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양꼬치 전문점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꼬치보다 덩치가 큰지라 겉과 속이 회색으로 똑같이 익어버리기 쉬워 권하지 않는다. 차라리 집에서 쇠고기 스테이크처럼 소금과 후추로 간한 뒤 뜨겁게 달군 팬에 겉을 충분히 지져 익히는 게 훨씬 맛있다. 한편 바로 뒤쪽 부위인 프렌치랙은 숄더랙과 비교하면 중심을 이루는 단일 근육이 또렷하게 보일뿐더러 부위 전체의 크기도 절반 수준으로 작다. 그만큼 과조리 되기도 쉬운데 더 고급 부위로 가격대가 높으므로 숄더랙으로 솜씨를 충분히 갈고 닦은 뒤 시도할 것을 권한다. 

구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면 부위를 바꿔 다른 조리법도 시도해 볼 수 있다. 종종 통다리 회전 직화구이를 내는 중식당이 있는데 다리, 특히 정강이 아랫쪽은 지방이 적어 갈비찜처럼 푹 조리는 게 훨씬 맛있다. 지금까지 많이 먹지 않았던 동물의 낯선 부위라면 익숙한 조리법과 짝을 지어서 조금씩 친해지는 게 좋은데, 마침 양고기는 가장 카레와 고전적인 조합이다. 따라서 돼지고기 대신 양 사태를 통으로 넣고 끓인 카레를 시작으로 토마토소스 등으로 조금씩 지평을 넓혀 나간다. 편의점에서도 사먹을 수 있는 자두나 살구 말린 것과 양의 사태를 함께 조려도 맛있다. 

양꼬치에 커민과 소금, 고춧가루 등을 배합한 양념을 찍어 먹는 맛이 양고기 대중화의 일등공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양꼬치에 커민과 소금, 고춧가루 등을 배합한 양념을 찍어 먹는 맛이 양고기 대중화의 일등공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양고기 대중화의 일등공신 ‘쯔란’과 맥주 

양고기 이야기에서 쯔란(孜然), 즉 커민이 빠질 수 없다. 잘 익어 지방이 충분히 녹아 나온 꼬치에 커민과 소금, 고춧가루 등을 배합한 양념을 찍어 먹는 맛이 무엇보다 양고기 대중화의 일등공신 아닐까. 양꼬치 전문점에서 먹을 때는 물론 집에서 조리하려고 인터넷 등에서 양고기를 주문해도 요즘은 배합된 양념을 한 봉지씩 끼워 보낸다. 특유의 향이 워낙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양고기는 기본적으로 대담한 맛의 향신료를 잘 소화해 낸다. 양꼬치-쯔란의 조합을 좋아한다면 계피, 아니스, 카르다몸, 실란트로와 코리앤더(고수풀과 씨앗), 박하, 너트맥, 로즈마리, 타임, 사프란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주요 향신료를 전부 즐길 수 있다. 한편 채소로는 가지가 양고기의 지방과 육즙을 잘 빨아들여 곁들여 먹기에 좋고, 우리의 자존심인 마늘도 잘 어울린다. 

맥주 덕분에 양꼬치가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칭따오를 위시한 중국산 맥주, 특히 ‘페일 라거’류는 양고기와 그럭저럭 어울린다. 그 자체로 엄청나게 맛있는 맥주라고는 할 수 없지만 비교적 상큼하며 깔끔하고 시원하게 잘 넘어가니 쇠고기와는 또 다른 맛과 향의 양고기, 특히 직화구이를 씻어 내려 주는 데는 제 몫을 한다. 하지만 그 너머의 가능성을 찾고 싶다면 양꼬치집만큼이나 선택지는 많다. 일단 탄산을 선호해 맥주를 고수하고 싶다면 조금 더 진한 에일 계열을 권한다. 단순히 씻어 내려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시트러스를 대표한 과일향 및 라거보다 두드러지는 쓴맛으로 양고기의 맛을 돋아주는 한편 균형도 잡아준다. 보리의 일부를 구워 담그는 흑맥주는 특유의 구수함으로 차분하게 양고기를 포용해준다. 

양고기와 맥주도 잘 어울리지만 과일향이 양고기 특유의 향을 잡아주는 와인과도 찰떡궁합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양고기와 맥주도 잘 어울리지만 과일향이 양고기 특유의 향을 잡아주는 와인과도 찰떡궁합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과일향 지닌 와인과도 찰떡궁합 

그렇다면 맥주 바깥의 세계는 어떨까? 한마디로 엄청나다. 레드와인이 믿고 마시는 고기의 단짝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몇 가지 종류와 양고기는 폭발적인 수준으로 잘 어울린다. 원리는 탄산을 빼면 맥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과일의 맛과 향이 북돋아 주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체리와 산딸기, 자두 등 향이 진하고 단맛도 두드러지는 가운데 신맛도 넉넉하게 목소리를 내는 핵과류의 맛과 향을 지닌 와인이 잘 어울린다. 양고기 특유의 강한 향과 비슷하고 기도 죽지 않는 가죽이나 훈연향(나무나 풀을 불완전연소 시킬 때 나는 연기 냄새)을 지닌 종류도 선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포도의 껍질 및 레드와인이 공통적으로 거치는 오크통 숙성에서 얻는 탄닌이 기름기를 견제해준다.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찰떡궁합 와인을 품종과 지역으로 함께 살펴보자. 과일의 맛과 향이 두드러지는 와인의 품종으로는 쉬라(Syrah 혹은 쉬라즈 Shiraz)와 진판델, 그르나슈와 템프라니요가 있다. ‘과일 폭탄(Fruit Bomb)’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이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과일 폭탄들은 레드와인 가운데서도 도수가 가장 높다. ‘쉬라/쉬라즈’는 호주, 진판델은 미국 나파 밸리가 대표적인 산지이다. 구대륙에서는 쉬라를 필두로 그르나슈와 템프라니요 등의 여러 품종을 ‘블렌딩’해 산지의 명칭을 달고 등장한다. 프랑스에서는 남부인 론 지방에서 생 조셉(쉬라), 샤토네프 뒤 파프(그르나슈) 등이, 스페인에서는 북부의 리오하(템프라니요)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품종을 쓰더라도 구대륙의 와인은 과일 폭탄의 수준은 대부분 아니며, 블렌딩은 각 지역의 대표 품종 다수에 소수 품종으로 균형을 맞춰 주는 개념으로 이루어진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레몬을 선택할 수 있다. 레모네이드, 그도 아니라면 레몬 한 조각을 띄운 탄산수만으로도 훨씬 즐겁게 양고기를 먹을 수 있다. 

양고기를 갈아서 만든 패티는 블루치즈와 잘 어울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양고기를 갈아서 만든 패티는 블루치즈와 잘 어울린다. 게티이미지뱅크

 ◇버거에 넣을 때도 ‘미디엄 레어’로 

쇠고기에 질릴 날이 과연 오겠느냐만, 햄버거로 ‘소 대신 양’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다. 온라인의 양고기 전문점에서도 간 것을 찾기 어려운데, 대신 꼬치용으로 파는 어깻살이나 지방이 적당히 섞인 자투리살을 푸드 프로세서 등으로 갈아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갈기는 했지만 어쨌든 양고기이므로 많이 익히지 않는 게 중요하니 2㎝이상으로 두툼하게 패티를 빚어 미디엄 레어로 구워 빵 사이에 끼워 먹는다. 지방이 잘 녹아 나온 양고기 패티라면 비슷한 향의 염소젖 치즈나 소젖 치즈 가운데서도 맛이 대담한 블루치즈와 잘 어울린다. 다만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박테리아는 원래 고기 내부로는 침투하지 못하므로 스테이크처럼 겉을 지지면 사멸하지만, 고기를 갈면 표면과 내부가 완전히 섞여 버리므로 낮은 내부 온도로 익힌 패티는 면역력이 약한 이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만 염두에 두자.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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