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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이익 나눴더니 5년간 상여금 10배로 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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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이익 나눴더니 5년간 상여금 10배로 올랐죠”

입력
2019.06.24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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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이 주인인 회사’책 낸 박종규 KSS해운 창업주ㆍ고문 

박종규 고문은 이번 책을 출간하며 제목을 직원 공모로 결정했다. 책 제목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사훈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덕담에 “경영을 할 때 형식논리는 중요하지 않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이 회사에 사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박종규 고문은 이번 책을 출간하며 제목을 직원 공모로 결정했다. 책 제목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사훈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덕담에 “경영을 할 때 형식논리는 중요하지 않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이 회사에 사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오너 경영이 압도적인 한국에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하는 기업이 있다.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해 직원이 주식 배당을 받고, 이익공유제(성과공유제)를 통해 배당과 별도로 이익의 10%를 직원이 나눠 갖는다. 올해로 창립 50년을 맞은 ㈜KSS해운이다. 화학약품 등 특수화물과 액화석유가스(LPG) 등을 운송하는 업체로, 지난해 매출 2,025억원, 영업이익 471억원을 올린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를 세운 박종규(84) 고문이 최근 50년 역사를 정리한 ‘직원이 주인인 회사’(홍성사 발행)를 펴냈다.

최근 서울 인사동 KSS 사무실에서 만난 박 고문은 “죽기 전 유서라고 생각하며 책을 썼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줄 줄은 몰랐다. 특히 독자 8할이 30~40대 직장인”이라며 “젊은 직장인들의 꿈을 노골적으로 얘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은 두 달 만에 3쇄 6,000부를 찍었다. “제가 재작년 방광암에 걸렸어요. 그 전에도 위암 수술한 적 있는데, 이번에는 정말 못 살 거 같았어. 이렇게 죽으면 할 말도 못 남기겠구나 싶어서 병중에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악착같이 썼지. 아프니까 구술을 못하겠두만. 정신들 때가 불규칙하니까 (대필해줄) 사람을 붙일 수가 없었어요. 정신 들면 한 줄 쓰고 앓아 눕고, 또 한 줄 쓰고 앓아 눕고. 2017년 9월에 항암치료 시작해서 6번 하고 작년 3월부터 꼬박 1년을 썼어요. 그런데 희한하지. 이 책 쓰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370여쪽에 걸친 두툼한 이야기의 7할은 KSS해운을 직접 설립한 과정과 역경의 역사다. 박 고문의 첫 직장은 대한해운공사. “제가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성격이거든요(웃음). 교정에 울창한 벚나무 보고 서울고 지원했을 정도니까. 1960년 당시 해운공사 건물이 옛 서울역처럼 돔이 이렇게 있고 천장이 하얗고 참 멋졌어요. ‘열심히 해서 이런 회사 사장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싶었죠.” 박 고문은 과장 시절 종업원지주제 설립을 주도했다가 정권 눈밖에 나 그만뒀다. 민간회사를 몇 달 다니다 “법인 돈인지 개인 돈인지 구분 안 하는 사업방식”에 실망해 다시 퇴사, 1969년 12월 31일 직원 5명으로 KSS해운을 창업했다.

인터뷰 당일 회사 로고가 새겨진 와이셔츠를 입고 나온 박종규 고문은 "어제 사원들이 선물해 준 것"이라고 자랑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인터뷰 당일 회사 로고가 새겨진 와이셔츠를 입고 나온 박종규 고문은 "어제 사원들이 선물해 준 것"이라고 자랑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월급쟁이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했다”는 말처럼 박 고문은 처음부터 전문경영인제도를 염두하고 사장 시킬 인재를 찾았고, 60세 정년을 맞은 1995년 3월 일선에서 물러났다. 25년 운영 기간에도 ‘사장 월급’만 가져갔다. ‘물려주지도 않을 회사를 왜 죽기 살기로 키웠느냐’는 질문에 “(기자가) 사업을 안 해봐서 그 심정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업가한테 회사는 자아, 자존심 전부에요. 회사가 망하면 내 삶도 없어. 화가가 자기 죽은 다음에도 작품이 살아남기를 바라잖아, 그거랑 똑같아요.”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창업 초기부터 불법 보상금(리베이트), 밀수 근절 정책을 폈다. 1970년 첫 배가 출항할 때 박 고문이 직접 부산항을 찾아가 선원 전체 소지품을 검사했다. 밀수 수입이 짭짤하던 시절, 대기업이 기본급 200%를 상여금으로 줄 때 550%까지 주며 선원들의 줄어든 수입을 보상했다. 밀수가 없으니 선원들이 운항 중 신경 쓸 일은 안전 뿐, 덕분에 50년 간 큰 선박 사고 한번 없었다. ‘현재 고객 회사의 7할이 외국 기업’인 배경이다. 2014년부터는 상여금 600%중 400%는 임금으로 편입하고 200%는 이익배당금에 연동해 지급한다. 회사가 적자가 나면 자동적으로 수입이 깎이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더라도 감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성과공유제를 실시한 5년간 상여금은 1,146%까지 늘었다. 해운공사 시절 꿈꿨던 종업원지주제는 당연히 적용했다. 다만, 급전이 필요했던 직원들의 주식을 박 고문이 사주느라 가불이 많아 95년 사장 퇴임 때 퇴직금이 거의 없었단다. KSS해운은 창업 38년만인 2007년에 상장됐다.

“내가 이런 회사에 다니고 싶었어요. 이익 나면 직원한테 나눠주는 회사, 열심히 하면 사장 올라갈 수 있는 회사. 그래서 전문경영인체제를 만든 거예요. 우리나라에 너무 없다 보니 사람들이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일본만 해도 100대 기업 중에 전문경영인 기업이 94개에요. 국내 전문경영인이라고 하지만 자기 부릴 사람 지명도 제대로 못하죠. 그게 무슨 최고경영자(CEO)야. 진짜 CEO는 우리 사장이지. 제멋대로 하니까. 눈치 보지 않고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지는 거 그 경험이 굉장히 중요해요.”

KSS해운은 1995년 장두찬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으며 전문경영인체제로 들어섰다. 현재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이대성 사장이 4대 대표이사를 맡을 정도로 전문경영인체제가 확립돼있다. 박 고문은 “이대성 사장은 정관에 따라 추천위원회가 뽑은 첫 전문경영인”이라며 “다음 꿈이 있다면 추천위원회에서 뽑은 두 번째 전문경영인을 보고 눈 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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