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도 등장…경찰 “범인 검거, 증거 확보도 했는데 수사 잘못 비판에 내부 힘들어 해”
전 남편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36)씨 사건 부실 수사를 비판하는 여론이 온라인 공간에서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징계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하지만 제주 동부경찰서는 “(수사 과정이) 국민의 눈높이에 못 미친 것 같아 송구하다”면서도 부실 수사 논란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제주 동부경찰서장 및 담당 경찰관의 징계 및 파면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범행장소 주변 폐쇄회로(CC)TV조차 유가족이 찾아줬으며, 범행 당일 시신으로 유추할 수 있는 쓰레기봉투를 유기하는 장면이 담긴 CCTV는 (경찰이) 유가족에게조차 밝히지 않았다”며 “유가족이 적극적으로 CCTV를 찾고 국민청원도 올리지 않았다면 그냥 실종사건으로 묻히고 말았을 것 같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고씨가 범행 장소를 떠나며 쓰레기종량제 봉투 4개를 버린 사실을 경찰이 알고도 공개하지 않은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 청원자는 경찰이 범죄 현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지 않고, 현장검증을 하지 않은 점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어 “경찰이 피해자와 유가족 인권은 무시한 채 피의자를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여 많은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며 “담당 경찰이 부실 수사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은 27일 오전 11시 기준 1만2,000여건의 동의 수를 기록했다.
특히 “야만적 조리돌림을 당할까 봐 현장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경찰의 해명도 비판 도마에 올랐다.
앞서 20일 경찰 내부 통신망인 ‘폴넷’에 제주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5명이 올린 글에 따르면 이 경찰서 서장은 "피의자가 범행 동기를 허위 진술로 일관하고 있었고 범죄 입증에 필요한 DNA, CCTV 영상 등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에서 현장검증을 하면 고유정이 ‘야만적인 현대판 조리돌림’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장검증을 안 하는 것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26일부터 제주 동부경찰서 홈페이지 ‘칭찬 한 마디’ 게시판에는 경찰의 부적절한 대응을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입장 바꿔 경찰 분들 가족이 그렇게 살해당했다면 이런 식으로 수사하겠나” “엄청난 고통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갈 피해자 유가족들은 배려하지 않고 가해자 조리돌림을 걱정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해자의 개인 경호원도 아니고 가해자 감싸주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등의 지적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동정론도 나온다. 몇몇 누리꾼은 “비록 국민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제주도의 공권력이 얼마나 바로 서 있는지 보여주시길 바란다” “정확한 수사를 통해 고씨에게 합당한 법집행을 꼭 해달라”고 응원했다.
제주 동부경찰서의 한 관계자도 27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현장검증의 경우 증거물이 충분했고, 진행해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담당 검사와 협의해 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안”이라며 “’조리돌림’ 방지라는 부차적인 내용이 주된 이유로 부각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또 고씨가 쓰레기를 버리는 CCTV 영상 존재를 공개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내용이 잔혹하고 공개되면 주변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질 것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았다”며 “숨겨봐야 법정에서 밝혀질 텐데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주장은 가당치 않다”고 반박했다. 범죄 현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지 않은 것도 “주민과 관광객들을 고려한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범인 검거를 못하거나 증거 확보를 못한 것이 아닌데, 수사가 잘못됐다는 비판을 받아 경찰 내부 직원들이 다들 힘들어하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인 A(36)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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