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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근로장려금 신청하라는 통지서에… “내 삶이 구원받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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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근로장려금 신청하라는 통지서에… “내 삶이 구원받은 느낌”

입력
2019.07.09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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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복지

Figure 1[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 신동준 기자/2019-07-08(한국일보)
Figure 1[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 신동준 기자/2019-07-08(한국일보)

청년수당으로 치과에 갔다거나 게임기를 샀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놀란 적 있으신가요. 현금성 복지를 어디에 쓰든 무슨 상관이냐는 의견부터 꼭 필요한 데에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까지 밀레니얼 세대들의 의견도 다양합니다. 기본소득의 효용성부터 보편적ㆍ선별적 복지와 같은 전통적인 논쟁까지 밀레니얼 세대가 직접 겪어본 복지, 필요하다고 느낀 복지들에 대해 이야기해 봤습니다.

[청년수당 4] [저작권 한국일보]보건복지부가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사업인 '청년수당'을 직권취소했던 2016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걸린 '청년수당'을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 배우한기자
[청년수당 4] [저작권 한국일보]보건복지부가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사업인 '청년수당'을 직권취소했던 2016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걸린 '청년수당'을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 배우한기자

◇복지, 먹고 사는 데에 확실히 보탬이 됩니다

카페인= 나는 주거 문제가 해결됐을 때 ‘복지 혜택을 받고 있구나’라고 느꼈어.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서울에 올라와 집을 구하는데 개강을 앞두고 대학가 주변 원룸이 동이 난 상태였어. 그나마 남은 원룸은 살 만한 곳이 못되거나 월세가 감당 못할 정도로 비쌌지. 개강은 다가오는데 집은 안 구해지지 ‘이러다 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갑갑하고 불안하던 와중에 지역 학사를 알게 됐어. 서울시가 타지역 출신 학생을 위해 기숙사를 지었는데 기숙사비 절반은 해당 지자체가 장학금 형태로 부담해 나는 절반만 내고 살 수 있다는 거야. 학교와 멀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저렴하고 입주 조건도 까다롭지 않아서 대학 생활하는 내내 살았어. 우리 학교는 기숙사 수용률이 매우 낮아서 A+를 하나만 놓쳐도 기숙사 선발에서 떨어지거든. ‘과톱’이 아니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주거 난민’ 신세가 되는 거지.

레아장군= 얼마 전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지서가 집으로 왔어. 작년에 1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몸이 축나서 아르바이트를 줄였거든. 그런 제도가 있는 줄 몰라서 신청한 적이 없는데 돈을 준다니까 어안이 벙벙했지. 사실 법대로 최저임금 주는 일자리만 되어도 구하기 힘든 ‘질 좋은’ 아르바이트에 속하잖아. 지금까지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곳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내가 번 돈 외에 더 보태준다니 삶이 구원받은 느낌이 들었어. 인턴 끝나면 또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에 너무 막막했거든. 일하면 공부도 못하고, 몸은 힘들고, 돈도 별로 안 되고. 주변 친구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난 공부도 못해 취업은 더더욱 늦어져 나이는 먹어. ‘왜 나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불만이 가득했어. 근데 근로장려금을 실제로 받기도 전에 이 통지서만으로 누군가 나를 응원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청년수당, 어디에 썼냐고요?

너구리= 복지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청년수당 아닐까. 청년수당 도입 초기 수혜자들이 청년수당을 엉뚱한 곳에 다 써버렸다는 얘기가 돌면서 ‘청년수당은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어. 청년수당은 청년들이 취업 준비하고,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하라는 취지에서 지급된 건데, 청년들이 그 돈을 정책 담당자들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썼다는 거야. 예컨대 술 마시고, 옷 사고 아무 데나 써버렸다는 거지. 정책 담당자들이 청년들이 취업 준비하는 데 착실히 돈을 쓰지 않았다고 청년수당 사업 자체가 실패라고 진단했다는 거야.

킥보드= 청년수당을 취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에만 사용하라고 강요하는 건 말이 안 돼. 청년들이 구직만 하는 건 아니잖아. 취업 준비생의 삶을 전혀 모르나 봐. 취준생도 책 사고 강의료 지불하는 것 외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데도 비용이 들어. 공부할 시간을 줄이거나 삶의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누군가에게 청년수당은 그 시간과 비용을 보전해줄 수 있어. 그 돈으로 친구와 술 한잔 사먹을 수도 있고, 그 돈 모아서 해외여행 갈 수도 있는 거고. 그건 본인 마음이지. “구직활동 하라고 돈 줬더니 그걸로 술이나 사먹고 있어?” 이건 청년에게 24시간 취업 준비만 하길 요구하는 ‘꼰대스러운’ 발상이야.

레아장군= 그런 목적으로 지급하는 돈이라면 기본소득의 개념에서는 다소 멀어졌네. 핀란드에서 1~2년 정도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정책효과 분석 보고서를 냈는데, 고용 개선 효과는 미미했지만, 삶의 질이 상당히 향상됐다고 응답했대. 취업에 눈에 띄는 도움이 되지 않았더라도, 돈 벌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이 돈이 있어 당장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 만으로도 기본소득의 효과는 있는 거 아닐까. 실패라고 본다는 거 자체가 좀 이상해. 오히려 청년수당을 더 많은 사람에게 주지 못했다는 게 실패 아닐까.

취업박람회를 찾은 청년들이 채용 공고 게시판을 살펴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취업박람회를 찾은 청년들이 채용 공고 게시판을 살펴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모두 누리면 좋겠지만 문제는 ‘재원’

너구리= 그게 이상적인 방향은 맞는데 현실적으로 그만큼의 재원이 없어. 기본소득의 치명적 결함은 기존에 있던 복지 정책을 축소해야 시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거야. 증세를 하지 않는 이상 기본소득 주려면 기존 세수에서 끌어다 와야 하잖아. 문제는 건강보험(엄밀히 구분하면 세금이 아닌 건보료로 운영되지만 준조세로서 세금과 비슷한 성격) 등 기존에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복지 제도를 줄여가며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게 과연 더 바람직하느냔 거지. 기존의 복지 제도는 취약계층을 수혜자로 하는데, 기본소득은 소득이나 재산 정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일정 현금을 지급하자는 것을 전제로 하잖아. 기존에 저소득층이 받던 복지 혜택들이 오히려 취약계층이 아닌 사람들에게 분산되어서 저소득층이 받는 몫이 줄어들 수 있어. 기본 소득 반대론자들이 비판하는 점도 이런 부분들이야.

킥보드= 복지 재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전제부터 재점검해야 해. 복지의 대상이 누가 되어야 하는지, 누가 더 취약계층인지 계산하는 것부터 보편적 복지의 가치와 충돌해. 시민들에게 무엇이 얼만큼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렇다면 얼만큼의 재원이 필요한지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증세 논의는 당연한 수순이고. 있는 세금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고민하는 건 기존의 복지 정책에 국한된 사고 같아. 기본소득에는 증세가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고, 충분히 재원을 확보할 수 없다면 기본소득도 할 수 없겠지.

에어컨= 증세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야. 자명한 해결책이지만 막상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지. 기본소득을 시행할 만한 재원이 마련되어 있느냐가 기본소득의 주된 쟁점이라고 봐. 한정적인 재원을 모두에게 주는 것보다 필요한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인 거지. 예를 들면 서울 청년수당은 저소득층 미취업자만 대상으로 삼아 포괄성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금액은 1년에 300만원가량이라 생활비 명목으로 쓰기에는 그 규모가 적절하대. 반면 연 100만원을 주는 경기도는 일정 기간 거주했다면 조건 없이 지급하기 때문에 완전기본소득에 가장 유사하지만, 실질적 생활안정 자금으로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야. 정말 필요한 사람들한테는 금액이 낮아진 게 타격이 클 수도 있잖아.

◇ ‘보편’의 범위를 넓혀가려면

카페인= 그 문제는 ‘다층적 복지’로 해소할 수 있어. 건강ㆍ고용ㆍ연금 등 분야별 복지제도를 더 촘촘하게 만드는 거지. 기본소득 하나만으로 모든 복지를 아우를 수도 없어. 궁극적으로 복지 다층화는 모두에게 일정 수준의 삶을 보장해.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 복지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액수의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도록 맞춰 주는 거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이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50이 부족한 사람에겐 50을 주고 이미 100을 가진 사람에겐 주지 않는 거지. 우리 모두가 비슷한 생활 수준을 보장받는다면 내 몫을 뺏길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레아장군=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들을 확보해 가길 바라. 무상급식이 필요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학교 급식비를 못 내는 사람도 있어. 무상급식 정책은 학교에서 공부할 때 밥 걱정은 안 해도 되게 만들자는 거였어. 건강보험 덕분에 아플 때 돈 때문에 병원 못 가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제도들이 점점 더 확대됐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가난이 운에 의해서 결정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해. 가난의 원인을 게으름에서 찾는 사회적 인식이 높을수록 복지 정책의 발전이 어렵다는 이론이 있어.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빈자들은 왜 가난해졌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50~60%가 ‘게을러서’라고 응답한대. 복지가 발전한 유럽 사람들은 24%만이 ‘게을러서’라고 답하고, 74%가 ‘운이 없어서’라고 했어.

너구리= 재분배 수준이 높은 국가들에서 높은 조세 부담률이 유지되는 건 국민이 사회에서 혜택을 받은 만큼 환원하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저들을 먹여 살려야 하냐”는 인식이 여전하고, 복지 수혜 대상을 무임 승차자로 보는 경향이 아직 강한 것 같아. 그런 생각이 있으니 지급 대상과 금액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사용처를 따지고 제한하게 되는 거 아닐까.

◇사회적 신뢰와 책임을 차근차근 다져나가야

킥보드= 미국에서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디즈니 창업주 손녀(에비게일 디즈니) 등 상위 0.1%의 사람들이 부유세를 더 늘려 달라고 했대. 증세를 하되, 모든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어갈 게 아니라 부자들의 돈을 더 가져 가라고 자발적으로 요구한 거야.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 없는 논의라서 인상 깊었어. 우리는 어떻게든 세금을 덜 내는 게 좋고, 피하려고 하잖아.

너구리= 그런데 부자들의 조세 저항만 강한 건 아냐. 아이러니하게도 증세를 통해 혜택을 받는 계층이 정작 증세에 반대하는 보수당에 투표를 하는 ‘계급 배반 투표’ 가 이루어지기도 해. 이 현상의 배경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어. 또, 투표를 할 때 경제적인 면보다 문화적인 부문을 중요시 하는 경우도 많아. 저소득층 노인분들이 증세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을 뽑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배경이지. 그래서 결국에는 증세를 통한 복지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손해를 보는 선택을 하게 되는 거지.

킥보드= 조세 저항이 강한 이유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세금이 제대로 쓰일 거라는 기대가 낮잖아. 복지정책으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의 경우, 조세율이 높은 대신 세금 사용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잖아.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예산안 편성 때부터 밀실 소소위(원내대표와 예결위 간사 등 극소수만 참여해 최종 예산안을 확정하는 회의), 깜깜이 예산, 쪽지 예산으로 유명하지. 세금을 내봤자 올바르게 정당하게 사용되지 않고, 국회의원의 배만 불린다는 생각이 조세 저항을 키운 것 같아.

카페인= 모든 문제를 국가 차원의 복지와 증세로 해결할 수는 없어. 나는 국가뿐 아니라 대학이나 기업 등도 복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학교 때문에 특정 지역으로 오게 됐다면 학교가 내 주거까지 책임지는 게 맞지. 기업의 경우도 육아휴직이나 산재보험 등 노동자가 꼭 필요로 하는 복지에 드는 비용을 고용할 때부터 고려해야 해. 국가가 복지를 제공한다고 해서 개별 대학, 기업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돼.

너구리= 증세를 통해 우리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해. 예를 들어, 병원비를 적게 낼 때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잖아. 다른 복지 인프라도 건강보험처럼 우리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으면 좋겠어. 그래야 조세 저항도 줄어들지 않을까? 결국에 증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개선되도록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해.

※기성세대는 ‘나약한 세대’라 손가락질하지만 스스로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가는 세대’라 부르며 뿌듯해 하죠.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앞날을 마주해 비장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리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ㆍ198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한국일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잠재력, 그들이 미처 어필하지 못한 속내를 이해하고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본보 인턴기자들의 방담(放談)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을 연재(매주 화요일)합니다. 

정리= 주소현 인턴기자

참여= 권현지, 김의정, 정예진, 조희연, 홍윤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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