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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혈 두드려 정신질환 치료"… 새 의료기술 인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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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혈 두드려 정신질환 치료"… 새 의료기술 인정 논란

입력
2019.07.08 04:40
수정
2019.07.08 07:3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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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자유기법을 수행할 때 두드려야 할 환자의 경헐 위치.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감정자유기법 2015년도 신의료기술평가 보고서에서 캡처
‘감정자유기법을 수행할 때 두드려야 할 환자의 경헐 위치.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감정자유기법 2015년도 신의료기술평가 보고서에서 캡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치료하는 한의술 감정자유기법 (1)단계 “나는 OO증상이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받아들입니다”라는 문장을 3회 반복하며 후계혈을 두드린다. (2)단계 치료목표가 되는 불편한 감정 및 증상을 입으로 소리내어 반복, 집중하면서 백회에서 후계혈까지 13개의 경혈점을 두드린다 (3)단계 중저혈을 두드리면서 눈을 감았다 떠서 동공을 우하방, 좌하방으로 이동. 이후 시계방향, 반시계방향으로 움직임. 돌린 이후 노래 1구절 가량을 흥얼거리고 숫자를 센 후, 다시 흥얼거린다.

정부가 경혈(經穴)을 두드려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는 한의술 ‘감정자유기법’을 새 의료기술로 인정하는 절차에 착수하자 양의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1일까지 감정자유기법을 의료신기술로 인정하겠다는 고시에 대해 행정예고를 했다. 고시가 확정되면 신의료기술평가 제도 도입 12년 만에 처음으로 한의술이 의료기술로 인정받는 셈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5월 3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를 열어 감정자유기법을 의료기술로 인정한다고 내린 결정이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새 의료기술이 의료기관에서 비용을 받고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는 평가절차다. 이를 통과해야만 복지부 고시를 거쳐 의료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 감정자유기법은 한 의료기관이 지난해 8월 22일 평가를 신청했다. 이 의료기관은 2015년에도 같은 기법으로 평가를 신청했지만 당시엔 유효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와 주류 정신의학계를 대표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신정) 등은 과학적 작동원리를 알 수 없는 비과학적 기술이 부실한 검증절차를 거쳐서 의술로 인정됐다고 주장한다. 이미 행정예고 기간 동안 복지부에 고시를 하지 말라는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다.

석정호 대신정 보험이사는 “환자의 기분을 다소 개선하는 효과가 있더라도 그것은 의료기술이라고 볼 수준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석 이사는 “감정자유기법은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던 기술로 정신건강의학과의 약물 치료 등에 비하면 효과가 미미한데 이걸 의료기술로 인정하는 건 말도 안 된다”라면서 “마사지를 도수치료와 똑같이 취급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라”고 주장했다.

양의계는 무엇보다 이번 평가의 근거가 된 논문 3편이 감정자유기법이 유효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2015년 평가 당시 이미 검토됐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내고 ‘감정자유기법은 1차 평가에서 연구자의 객관적 평가 없이 환자의 주관적 설문 평가만으로 보고되었다’, ‘문헌 3편은 1차 신청 때 근거 문헌으로 검토됐으나 소위원회에서 이미 최하위의 권고등급으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NECA는 애초에 1차와 2차 평가의 판단기준이 달랐기에 유효성에 대해 다르게 판단했다고 설명한다. 2015년에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나 심장박동 변화 등 수치를 기준으로 논문을 판단했다면 이번엔 논문에 담긴 환자의 증상, 부정적 감정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설문결과를 통해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최종평가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소위원회 인원 7명 가운데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2명)와 근거기반의학 의사(1명) 등 3명의 양의가 포함되는 등 평가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를 최종심의한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 역시 인원 20명 가운데 한의사는 2명에 불과하고 무엇보다 의협 추천 인사가 9명이나 포함돼 있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역시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고 양의계가 “선민의식에 나온 억지를 부리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한의협은 성명에서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똑같은 국가기관의 검증시스템을 통해 신의료기술로 인증된 수많은 양의계 치료법들 역시 유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보건시민단체는 신중한 입장이다. 무상의료운동본부의 김준현 정책위원장은 “양의사들의 말만 듣고 한의학 기술이니까 잘못됐다고 평가해선 안 된다”라면서 “NECA가 앞으로 작성할 외부에 공개하는 신의료기술평가 보고서를 확인해야 입장을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도 신중한 입장이다. 손호준 복지부 의료자원과장은 “행정예고 기간 동안 제시된 의견들을 검토해야 한다”라면서 “예정대로 고시도 가능하고, 고시하지 않을 수도 있고, NECA에 재검토를 의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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