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가 주목한 예지, 미국 그래미 후보 오른 토끼몬스타 
 한국계 여성 DJ들 전자 음악 시장서 활약... ‘K전자음악’ 두각 
 한국어 가사, 전통 유산 적극 활용… ‘아시안 쿨’ 영향 
“I’m into it all.” DJ 예지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적힌 말이다. ‘난 모든 게 좋다’는 뜻이다.그런 그는 “도전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영국의 BBC가 ‘2018년의 주목할 신인’으로 꼽은 한국 음악인이 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DJ 예지(본명 이예지)다. “깊은 하우스 비트에 한국어와 영어를 섞은 가사로 무아지경에 빠질 소리를 만든다”라는 게 선정 이유다. 2003년부터 해마다 주목할 만한 신인 음악인 10여명을 꼽는 ‘사운드 오브’ 시리즈를 통해서다.

BBC가 예지에 찬사를 보낸 것 자체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BBC는 아델과 샘 스미스의 ‘떡잎’을 일찌감치 알아본 곳이기 때문이다. 이 방송사는 2008년에 아델을, 2014년에 샘 스미스를 각각 유망한 신인으로 주목했다. 아델과 샘 스미스 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 BBC의 ‘대박 가수 예측’은 대체로 맞아떨어졌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 한국어” 

예지는 한국어를 악기처럼 활용한다. 예지가 만든 몽환적인 멜로디에 실린 한국어 가사는 많은 영ㆍ미권의 ‘힙스터’를 사로잡았다. 내가 마신 음료수란 뜻의 노래 ‘드링크 아임 시핀 온’ 뮤직비디오가 올려진 예지의 유튜브엔 곡의 후렴구인 “그게 아니야”를 영어로 표기한 ‘KU-GE-A-NI-YA’가 굴비 엮이듯 올라왔다.

그는 7일 한국일보와 주고받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어가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지닌 언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국어 가사를 쓰는 이유를 설명했다. “각이 진 문자엔 질감이, 소리엔 시적 느낌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예지가 두 언어를 가사에 교차할 수 있는 건 성장 배경 덕분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예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유목민처럼 자란 예지는 음악으로 동ㆍ서양의 경계를 허문다. “영ㆍ미권에선 제가 다민족이나 여성 같은 소수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음악인에게는 특별한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는 지난 4월 북미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에 섰고, 이달 말 일본에서 열리는 유명 록 페스티벌인 후지 록 페스티벌(후지록)에 초청받았다. 예지는 다음달 1일에는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저작권 한국일보]세계를 누비는 한국 여성 DJ들. 그래픽=김경진 기자
 ◇K팝 이어 세계로… 한국계 여성DJ의 음악 

세계 음악시장에서 주목받는 건 예지뿐만이 아니다. 여러 한국계 여성 DJ들이 전자 음악시장을 흔들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DJ 토끼몬스타(제니퍼 리)는 지난 2월 미국 유명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어워즈(그래미)에서 앨범 ‘룬 루즈’로 ‘베스트 댄스ㆍ일렉트로닉 앨범’ 후보에 올랐다. 방탄소년단도 넘지 못한 그래미 주요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례적 성과였다.

독일 베를린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DJ 페기 구는 올해 포브스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 30인(30세 이하)’에 꼽혔다. 한국계 여성 DJ들이 이끈 ‘K전자음악’이 세계에서 주목받은 결과다.

DJ 예지의 최근 곡 '원 모어' 뮤직비디오. 예지는 동양적 의상으로 영미권 음악 팬들의 눈을 사로 잡는다. 뮤직비디오 캡처

K전자음악이 해외에서 세를 넓히다 보니 해외 언론도 한국의 신인 DJ들을 적극 조명한다. 미국 유명 인디 음악 평론지인 피치포크는 지난 2월 DJ 박혜진의 ‘아이-디’를 ‘이달의 믹스(곡)’로 선정했다. 박혜진은 지난해 12월 데뷔 앨범 ‘이프 유 원트 잇’을 낸 신인 DJ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속한 미국 에이전시 윌리엄 모리스 인데버와 계약한 록밴드 롤러코스터 출신 DJ 히치하이커는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해외 전자 음악시장에선 한국계 여성 DJ들의 음악을 독특하게 여기고 그 특색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DJ 페기 구 앨범 '모먼트' 표지. 하회탈을 주 이미지로 활용했다.
 ◇동대문종합시장이 보물창고… 주목 받는 ‘한국색’ 

K전자음악의 차별화 요소는 한국적인 특색이다. 예지는 한국의 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복고 패션으로 해외 팬들의 눈을 홀린다. 팝아트의 선구자인 앤디 워홀을 배출한 카네기멜런대에서 개념 미술을 전공한 예지의 패션 보물 창고는 서울의 동대문종합시장이다. 그는 신곡 ‘원 모어’ 뮤직비디오에서는 윤기 나는 주름진 블라우스에 노리개 수술 모양을 한 귀걸이를 하고 나온다. 1980년대 그의 엄마가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이라고 한다. 페기 구는 지난달 낸 앨범 ‘모먼트’ 표지에 하회탈 이미지를 큼지막하게 넣었다.

북미와 유럽에서 자란 요즘 한국계 여성 DJ들은 한국 문화를 무기처럼 활용한다. 아시아 문화의 위상과 문화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데 따른 변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는 지난해 ‘아시안 쿨(Asian Cool)’을 주제로 강의를 열었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아시아 문화를 ‘힙’하게 소비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한국계 외국 창작자들이 앞으로도 더욱 적극적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낼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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