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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대학 출신은 누구?… 대한민국 엘리트의 뿌리를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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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대학 출신은 누구?… 대한민국 엘리트의 뿌리를 캐다

입력
2019.07.09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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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대학의 조센징’ 펴낸 정종현 교수 

‘제국대학의 조센징’을 낸 정종현 인하대 교수가 지난 3일 서울시 중구 한국일보에서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제국대학의 조센징’을 낸 정종현 인하대 교수가 지난 3일 서울시 중구 한국일보에서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200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회창의 조부는 충남 예산 지주였고, 백부는 교토제국대학 교수를 지냈던 이태규였다. 외삼촌 김성용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 일본 군수성 관료를 지냈다. 이모였던 김삼순은 홋카이도제국대학 식물학과 출신의 농학박사였다. 장인은 일제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를 패스하고 광복 이후 대법원장 직무대행 및 대법관을 지낸 한성수였다. 이회창 말고도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로 불리는 인물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본 제국대학 출신들이 적지 않다.

지난 3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정종현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부교수는 “제국대학 출신 엘리트들은 식민지 체제를 지탱하는 중심축이었던 동시에 좋든 싫든 대한민국 지식 체계를 근대화 시킨 인적 자원들이었다”고 말했다. 2010년 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1년간 재직했던 정 교수는 제국대학 출신 조선인 유학생들을 추적한 ‘제국대학의 조센징’을 최근 출간했다. 일본 본토에 있던 제국대학 7곳 중 규모가 가장 컸던 도쿄ㆍ교토제국대학으로 유학 간 한국인 399명(도쿄대 163명, 교토대 236명)을 전수조사 한 보고서다. 경성제국대학 졸업생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일본 본토 제국대학 졸업생을 정리한 연구는 처음이다.

누구도 뒤져 보지 않은 기록이었다. 학생기록부는 공개 불가였다. 유일한 자료는 해당 대학에서 매년 발행되는 ‘학생일람’이 전부였다. 본적에 적혀 있는 ‘조선’을 단서 삼아 일일이 조선인 유학생의 이름을 확인하고 입학생, 졸업생 명부와 대조해 추리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한국으로 돌아온 정 교수가 광복 이후 399명의 행적을 하나하나 추적하는 동안 9년이 흘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제국대학 출신 유학생들은 식민지 조선에 돌아와 사법ㆍ행정 관료나 교육자로 크게 활약했다. 도쿄제국대 졸업생 3분의 1에 해당하는 64명, 교토제국대 졸업생 96명이 관료의 길을 걸었다. 남북한에서 교수직을 거친 사람은 도쿄제국대 53명, 교토제국대 46명에 달한다. 광복 이후에도 이들은 정부 요직에 발탁되거나 정치권과 사법부 등을 장악하며 승승장구한다. 북한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북한으로 건너간 제국대학 출신들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세우는 등 북한 사회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이들이 내세운 명분은 ‘실력양성론’ ‘준비론’이었다. 고통받는 민족을 위해 부국강병에 나서야 한다는 것. 그러나 식민 체제에 저항했던 제국대학 출신 지식인들도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말을 곧이 듣기 어렵다. 정 교수 역시 “유학생 대부분은 일본 제국과 식민지 체제를 작동시키는 유용한 부품으로 작동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제국대학 엘리트가 한국 사회와 지식 체계에 남긴 유산을 지워 버려선 안 된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식민지 경험 자체를 역사에서 도려낼 수는 없습니다. 제대로 된 과거사 청산을 위해서라도 제국대학 출신들이 한국 사회에 끼친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요. 부정적 유산도 인정해야 과오도 바로 잡을 수 있죠.”

정 교수는 나머지 5곳(도호쿠, 규슈, 홋카이도, 오사카, 나고야) 제국대학 출신의 유학생 기록과 행적도 전수조사 할 계획이다. 600명이나 더 파악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욕심을 좀 더 내 본다면, 제국대학 출신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전부 추적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대한민국 엘리트 가계도가 어떻게 대물림되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 줄 수 있을 겁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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