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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방치에 잊힌 독립운동가 550명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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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방치에 잊힌 독립운동가 550명 찾았다

입력
2019.08.13 16:32
수정
2019.08.13 20:3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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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 행적 발굴… 보훈처에 포상 신청

‘만세 시위’ 배화여학교 학생 6명 등 포함

서대문형무소 전신인 서대문감옥에 구금됐던 배화여학교 학생 6인. 인천대 제공
서대문형무소 전신인 서대문감옥에 구금됐던 배화여학교 학생 6인. 인천대 제공

“아버지는 생전에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나 때문에 너희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하지 않으셨다. 뒤늦게 독립기념관을 가보자고 하셨지만 이미 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은 다 돌아가신 뒤였다.”

지난달 27일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조상학 선생의 둘째 딸 용자(66)씨는 13일 오전 송도국제도시 인천대 중국학술원에서 열린 ‘독립유공 대상자 550명 포상 신청 설명회’에 참석해 이같이 회상했다.

제74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조 선생을 비롯한 숨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행적이 대거 발굴됐다.

인천대학교는 3ㆍ1운동에 참여했거나 간도(만주 지린성 동남부지역)와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항일 투쟁을 펼친 잊혀진 독립운동가 550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을 했다고 13일 밝혔다.

조상학 선생은 일제강점기 철도청에서 한인 차별 대우에 반발,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강제 징집됐다가 1941년 만주에서 탈출한 이후 광복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과 제2지대장 노태준 장군 휘하에서 활동했다. 광복 후 귀국한 그는 6ㆍ25전쟁 때 장교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육군 중위로 명예 제대했다. 이후에도 그는 ‘국가에서 알아줄 것’이라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하지 않았다.

용자씨는 “조국 광복을 위해 애쓰신 아버지 생전에 포상을 받아 기쁘게 해 드리고자 애썼지만 돌아가시고 말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포상 신청 대상자 중에는 1920년 3월 1일 3ㆍ1운동 1주년을 기념해 교정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붙잡혀 서대문형무소 전신인 서대문감옥에 갇혀 곤욕을 치른 배화여학교(현 배화여고) 학생 6명도 포함됐다. 당시 배화여학교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구금된 학생은 24명이었는데, 이번에 발굴된 6명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포상을 받았다.

간도 왕칭현에서 대한군정서 모연대장으로 활약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최수길 선생과 그의 아들로, 조봉암 선생 등이 발기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해 독립군 자금을 모으다가 붙잡혀 징역 8년을 선고 받은 최령 선생도 포상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독립유공자 발굴작업을 이끈 이태룡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초빙연구위원(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검증위원)은 “배화여학교 학생 6명이 포상에서 제외된 것은 당시 법원 판결문과 서대문감옥에서 촬영된 사진 속 이름 한자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며 “당시 법원에선 판결문을 날려 쓰는 초서(草書)로 작성했는데,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거나 아예 다른 글자를 쓴 사례도 있다”라고 했다.

이태룡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초빙연구위원과 독립유공 포상 신청 대상자 후손들. 이환직 기자
이태룡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초빙연구위원과 독립유공 포상 신청 대상자 후손들. 이환직 기자

인천대 측은 보훈처에 포상 신청을 하면서 전체 550명 중 548명의 판결문을 모두 발굴해 함께 제출했는데, 그 양이 2만500여장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결문이 발견되지 않은 독립운동가 2명은 석주 이상룡 선생이 이끈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서로군정서’에서 투쟁을 벌인 임인호 선생과 조 선생이다.

임 선생의 딸 희숙(80)씨는 “어머니께서 40여년동안 선친이 남긴 쪽지를 들고 발이 부르트도록 노력하셨지만 보훈처에서 포상이 계속 반려돼 가슴에 한을 품은 채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번에 발굴된 판결문과 상고 이유서를 보면 하나의 판결문에 18명이 사형, 4명이 무기징역에 처해진 경우가 있었다. 또 3ㆍ1운동 만세시위 참가자들을 1.1평(3.63㎡) 감옥에 16, 17명씩 길게는 2년간 가두고 심한 매질을 한 일본 경찰의 만행도 드러나 있었다.

이 연구위원은 “평안도와 황해도 재판기록은 고등법원(현 대법원)의 기록뿐이고 함경도는 1심 재판 기록을 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남한 재판 기록도 아직 70% 이상 공개하지 않아 독립유공자 공적을 찾는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재판기록을 하루빨리 공개하고 보훈처도 포상대상자를 신속하게 심의해주기를 바란다”라며 “서대문감옥에 사진자료만 남아있는 분들 중에 포상이 되지 않은 분들을 내년 3월까지 모두 발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연구위원은 앞서 올해 1월 3ㆍ1운동 주도자인 백인제 박사 등 포상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411명을 발굴해 포상 신청을 했으며 이중 298명이 서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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