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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분한 할머니 “나이 구십에 글자 배우니 분한 마음 몽땅 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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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분한 할머니 “나이 구십에 글자 배우니 분한 마음 몽땅 사라져요”

입력
2019.08.24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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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최우수상 

권분한 할머니가 직접 쓴 시 ‘내 이름은 분한이’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권분한 할머니가 직접 쓴 시 ‘내 이름은 분한이’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한글을 깨친 만학도 할머니가 전국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을 받는다. 교육부 산하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개최한 ‘제8회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내 이름은 분한이’를 제출한 권분한(88) 할머니가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권 할머니는 다음달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상을 받는다. 작품은 다음달 4~6일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광장 방면 인도에도 전시된다. 20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자택에서 만난 권 할머니는 “나이 구십이 다 되도록 상은 처음”이라며 얼떨떨해했다.

“어머니께서 딸만 셋을 낳아 분하다고 해서 막내인 내 이름을 분한으로 지어줬다”는 권 할머니는 “평생 내가 가장 분했던 것은 글을 모르고 살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출품작에 ‘글자만 보면 어지러워 멀미가 났지만 배울수록 공부가 재미나요.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구십에 글자를 배우니까 분한 마음이 몽땅 사라졌어요’라고 썼다.

제8회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된 권분한 할머니의 시화 '내 이름은 분한이'. 안동시 제공
제8회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된 권분한 할머니의 시화 '내 이름은 분한이'. 안동시 제공

배움의 기회가 한 번 있기는 했다. 열 살이 조금 넘어 학교에 갔는데 나이가 많다고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또래들보다 나이가 몇 살 많다고 받아주지 않는 바람에 집에 돌아와 엉엉 울었다”는 할머니는 그 후 80년에 가까운 세월을 자신의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까막눈의 서러움은 컸다. 수십 년 전 군대 간 아들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할 당시 그는 병원 가는 길과 버스, 심지어 병실조차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길을 물으면서 “글자를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말도 수없이 되풀이했다. 권 할머니는 “밥만 할 줄 알고 풀만 벨 줄 알았지 글자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던 터라 답답한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권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2년여 전인 2017년 4월 마을 경로당에서 열린 안동시 한글배달교실에서다. 그는 “처음 책을 받아 들고 폈을 때 날아갈 듯 좋았다”며 “글자를 배우면 모르는 것도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로 설렜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로 지금까지 2년여 동안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병원 진료마저 늦추며 수업에 참석했다. 4~11월 매주 화ᆞ목요일 오후 2~4시 2시간 동안 이어지는 수업에 그는 3년차 마지막 해인 올해까지 개근이다. 3년째 권씨를 지도하고 있는 우명식(54) 강사는 “권 할머니는 수업 시간에 하나라도 놓칠까 누구보다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한다”고 말했다. 권 할머니는 “구십을 바라보더라도 배울 수 있을 때 배워야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권분한 할머니가 경북 안동시 용상동 마뜰작은도서관에서 연습장을 들고 자신이 적은 글자를 읽고 있다. 안동시 제공
권분한 할머니가 경북 안동시 용상동 마뜰작은도서관에서 연습장을 들고 자신이 적은 글자를 읽고 있다. 안동시 제공

권 할머니의 다음 목표는 편지쓰기다. “달력도 볼 줄 알고 시도 썼으니 이제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싶다”며 “한글배달교실이 끝나도 공부는 계속할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한편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성인문해교육의 필요성과 사회적 인식 확산 등을 위해 2012년부터 매년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을 열어 최우수상 10명 등 수상자 150여명을 선정해 격려하고 있다.

안동=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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