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방부, 강경 성명 수정본까지…“美·동맹국 안보에 부정적 영향”국무부 논평 수위는 더 높아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이 22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타와=로이터 연합뉴스

‘우려’, ‘실망’, ‘심각한 오산’

한국의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응 곳곳에는 충분한 이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오랜 동맹 한국에 대한 서운함과 불쾌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미국은 당초 발표했던 정부 공식 성명의 비판 수위를 끌어올려 수시간만에 수정본을 내놓는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또 동맹국을 향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불만의 수사와 제스처를 총동원하며 작심한 듯 한일 간 갈등을 안보 영역으로 확장한 한국 정부에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동맹에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지만, 백악관이 지켜보는 눈초리는 차갑기만 하다. 지소미아 종료가 ‘철통 같은’ 동맹을 다짐해온 한미간 갈등 국면을 열어 젖힌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오후 2시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오전 통화사실을 언급하며 “(한일 간) 정보 교류에 대한 협정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결정에 실망했다(disappointed)”고 단언했다. 캐나다 오타와를 방문 중인 폼페이오 장관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한 뒤 “미국은 (한일이) 지속적으로 (서로) 관여하고 대화하기를 촉구해 왔다”며 “미국은 두 나라가 양국관계를 정확한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 국방부는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전 9시쯤 한국 정부 결정에 대한 첫 성명을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한일 양국이 이견 해소를 위해 협력하길 권고한다. 양국이 이를 신속하게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직접적 지적은 없었다.

그러나 불과 4시간 뒤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미 국방부는 성명 수정본을 내고 “이 결정을 내린 ‘문 정부(Moon administration)’에 ‘강한 우려와 실망감(strong concern and disappointment)’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일 간 마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상호 방위와 안보적 연대는 지속해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 국가가 상대국 행동에 ‘실망했다’는 반응을 발신하는 것은 외교 관례에서 최고 수준의 불만감을 드러낸 것이다. 하물며 동맹관계로서 상호 간 신뢰를 강조해온 한미 사이에서 ‘실망’이란 반응이 등장한 것 자체가 한미동맹 관계에 가볍게 봐선 안될 경고음이 들어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날 정경두 국방장관과 통화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도 성명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미국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대외 메시지 성격을 지닌 성명을 수정해서 다시 발표하기는 이례적이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미국 입장에선 이른 아침에 전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과 국무부 측의 의견을 취합해본 결과 당초 국방부의 1차 성명으로는 미국의 입장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경고성 메시지’가 가득한 수정본을 다시 낸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국무부가 이날 오후 다소 늦게 전달한 논평 수위는 더 높다. 국무부는 국방부 성명에 담긴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재차 강조하며 “미국은 이번 (한국의) 결정이 미국의 안보이익과 동맹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문재인 정부에 수 차례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결정은 미국과 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고 동북아시아에서 직면한 심각한 안보 분야 도전과 관련한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오산을 반영한다(reflects a serious misapprehension)”고도 했다.

한국(South Korea) 대신 ‘문 정부’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따른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문 정부(Moon administration)’라는 표현을 성명에서 사용한 것은 유례가 없어 보인다. 트럼프 정부의 불쾌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날 미 정부 고위소식통은 “미국이 이해하고 있다고 한국 정부가 설명한 데 대해 불만족스러우며 사실이 아니다”고 강도 높게 항의의 뜻을 전했다. 이 소식통은 청와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미국이 이해하고 있다고 밝힌 데 대해 이같이 표현하면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우리의 불만족(unhappiness)을 여기(주미 한국대사관)와 서울에서 표했다”고 덧붙였다.

보기 드문 미국의 거친 반응을 두고 일각에서는 갈등이 끊이지 않는 한일관계에 대한 미국의 피로감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이 일 때마다 ‘중립’을 취해왔던 미국이 이번에는 갈등을 안보 분야로 확전한 한국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경고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소미아 종료로 동북아 지역 안보위험 관리는 더욱 어렵게 됐다고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WSJ에 “미국의 집단 안보 체제를 유지·강화하는 데 기여하려는 문 정부의 노력에 근본적 의문을 품게 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미국 유력 언론들도 대체로 한국 정부 결정으로 대북 정보력 약화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사설에서 “한일의 ‘진짜 적’인 북한과 중국을 제외한 당사국 모두 지는 싸움”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한일 양국이 냉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진지한 압박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한반도 전문가들의 발언을 빌려 “지소미아 종료로 인한 최대의 패자는 한국이고 최대 승자는 북한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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