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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될 걸 알면서도 글을 쓰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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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될 걸 알면서도 글을 쓰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입력
2019.08.31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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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하는 마음’ 책 낸 김필균씨 

최근 생애 첫 저서를 쓴 14년 차 문학편집자 김필균씨. 11명의 문인을 인터뷰하며 그간 쌓은 공력과 문학계 뒷얘기를 들려준다. 홍인기 기자
최근 생애 첫 저서를 쓴 14년 차 문학편집자 김필균씨. 11명의 문인을 인터뷰하며 그간 쌓은 공력과 문학계 뒷얘기를 들려준다. 홍인기 기자

책 판매부수로 치면 요즘 한반도에서 제일 잘나가는 시인 박준(36)이 받은 인세는 얼마일까. “시집 값이 8,000원(현재는 1만원이다)이니까 권당 인세가 800원, 여기에 판매 부수(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11만권)를 곱하면 8,800만원이에요.” 그렇다고 책만 써서 생계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박씨는 덧붙인다. “시집이 나온 지 7년이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7로 나누어서 연봉이라 생각하면… 이거 어떡할 거야.”

박씨와 이렇게 속 터놓고 문단 뒷얘기를 나눈 사람은 김필균(39)씨.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등 문학전문 출판사를 거쳐 프리랜서로 10여년째 소설집, 시집, 평론집, 문학잡지를 만들고 있는 편집자다. 국내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편집한 김씨가 시인 박준을 비롯해 소설가 최은영, 문학평론가 신형철, 에세이스트 정여울, 출판평론가 금정연, 시인 겸 편집자 서효인, 극작가 고재귀 등 11인을 인터뷰한 책 ‘문학하는 마음’을 냈다. 김씨가 쓴 첫 저서다.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김필균씨는 “한없이 부끄럽다”면서도 “책 받은 정여울씨가 ‘이제 작가님이라고 불러야겠다’고 격려해 주더라. 인터뷰해준 분들의 응원을 듣고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자신의 장점을 “주제 파악”이라고 생각했던 김씨가, 국내 1급 작가들의 원고를 보며 ‘무릇 돈 받고 쓰는 글이란 이런 것’임을 아는 그가, 민망하게도 직접 책을 쓴 사정은 이렇다. “오빠가 1인 출판사를 차리고 시리즈물을 냈어요. 출판, 광고, 영화처럼 특정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을 인터뷰해서 ‘일하는 마음’이란 문패로 나가는 거죠. 대화가 없는 남매인데, 밥 먹다가 갑자기 섭외한 작가 자랑을 신이 나서 하는 거예요. 그러고 떠보더라고요. ‘문학하는 마음 편은 네가 쓸래?’하고.”

유명작가를 섭외할 수 있겠냐는 무시에 오기가 생겼다. 당장 만날 수 있는 작가 명단을 짜서 건넸다. 김씨는 “명단을 보고 오빠가 놀라더라. 순간 우쭐했다. 인터뷰하고 원고 써야 한다는 부담을 생각 못 하고, 멋모르고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출판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으로 밥을 사고 있었다. 그렇게 호출한 사람들이 평소 ‘갑’(출판 계약에서 저자가 갑, 출판사가 을이다)으로 만났던 저 작가들이다.

'문학하는 마음' 펴낸 출판편집자 김필균씨. 홍인기 기자
'문학하는 마음' 펴낸 출판편집자 김필균씨. 홍인기 기자

김씨가 작가들을 일로 만난 건 2008년 무렵부터다. 광고 전단지, 기업사보를 제작하는 기획사 몇 군데를 거친 후 문을 두드린 곳이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였다. 비평가 김병익 김주연 김치수 김현이 만든, 작가 최인훈과 이청준이 전집을 낸 그곳은 (등단을 열망하는) ‘문학병’에 걸려본 사람들에게 특별한 출판사로 손꼽힌다.

1급 작가들의 정제된 원고를 책으로 묶으며 김씨가 제일 먼저 배운 건 “교정지에 빨간색 펜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명백한 오타는 파란 펜으로 수정하고, 거친 문장은 연필로 수정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글은 저자의 것이고 저자는 갑”이란 생각은 아직도 여전하다. 김씨는 “외국의 경우 문학 편집자가 작품 창작 과정에 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작가가 애초에 완성된 원고를 넘기기 때문에 편집자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자료 조사, 전체 구성의 맥락 파악 등 작가가 글 쓰느라 놓치는 부분을 찾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갑을 관계에서 취재원으로 만날 때 태도가 다른 사람’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김씨는 단호히 “없었다”고 답했다. 물론 마감 날짜를 한참 미뤄 원고 주기로 악명 높은 작가에게 지긋지긋하게 시달린 일 같은, ‘갑을 관계’ 때 대놓고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제는 물을 수 있다”며 “왜 (원고 제 때) 안주냐”고 묻기도 한다. 소설가, 시인, 서평가, 아동문학작가 등 각기 다른 위치에서 ‘문학하는’ 11명에게 김씨가 똑같이 던진 질문은 ‘문학하면서 먹고사는 게 가능한가’이다. 문단 아이돌 박준에게도, 상 복 많은 최은영에게, 썼다 하면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윤이수에게도 글만 써서 먹고살기란 녹록한 과제가 아니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으로 베스트작가 반열에 오른 에세이스트 정여울은 한술 더 떠 “자기만의 글을 쓰려면 과감히 투잡을 뛰라”고 조언한다.

편집자인 자신의 사연까지 12가지 ‘문학하는 마음’을 통해 김씨는 말한다. “경제적인 혹독함을 얘기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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