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 한 명 인사에 온 나라가 만신창이
외교고립 경제붕괴 민생도탄 위기 안 보이나
거친 바다 건너야 할 때 뗏목에 집착해서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6일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일 사상 초유의 ‘기자 청문회’에서 차기 대권 주자의 뜻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답이다. 실제로 매일 TV로 중계되는 조 후보자의 출근길 얼굴은 갈수록 수척해지고 있다. 그의 딸과 부인, 어머니, 동생, 전 제수, 5촌 조카 등 가족들도 고초를 겪긴 마찬가지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의혹이 터져 기자들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단국대 공주대 동양대 등 각 대학도 몸살을 앓고 있다. 학생들은 촛불을 들었다. 촛불로 일어선 자가 촛불로 무너질 참이다. 내로라하는 정치인들도 조연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청와대와 검찰이 정면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건 조 후보자가 아니라 온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되면 조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는 게 모양새도 좋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다. 아니면 조 후보자에 대한 지명이 철회되는 게 순리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분위기다. 조 후보자 가족에 대한 국민적 공분과 배신감이 아무리 커도 불법은 없고, 조 후보자 본인의 문제도 아니라는 입장인 듯하다. 국민들이 볼 때 이는 모순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문 대통령 스스로 어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여기에서 밀리면 야권에 주도권을 내줘 레임덕(정권 말의 권력누수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기우에 불과하다. 레임덕은 정권 교체가 분명할 때 생긴다. 차려 준 밥상도 못 찾아 먹는 지금 야권의 면면을 보면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문 대통령이 걱정해야 할 부분은 야권의 공세가 아니라 민심의 이반이다. 레임덕을 막겠다며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며 조 후보자를 고집할 때 오히려 정권 무너지는 속도만 더 빨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장관 자리 하나 임명하는 데 온 나라가 요란을 떨면서 국력을 허비할 정도로 한가한 때가 아니다. 우린 이미 미래 산업의 명운을 건 일본과의 경제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이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는 쌍을 이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 드나들듯 휘젓고 다니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는 우리 군의 경고 사격에도 두 차례나 독도 영공까지 침범했다. 이에 우리 군이 독도 훈련을 실시하자 이번에는 동맹 미국이 발끈하고 나서면서 한미 균열까지 드러났다. 우린 주한 미국대사를 초치해 따졌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미국을 꾸짖는 게 통쾌하긴 해도 1997년 외환위기처럼 한미 관계가 삐걱거릴 때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기억이 아직 국민들 뇌리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옛날 여행길에 나선 나그네가 개울에 이르렀다. 그는 갈대와 나무로 뗏목을 엮어 개울을 건넜다. 그는 뗏목에 너무 고마웠다. 그럼 나그네는 뗏목에 대한 도리를 다하기 위해 뗏목을 머리에 이고 길을 가야 할까. 아니다. 뗏목은 그대로 개울에 놔둬 다른 이가 탈 수 있게 하는 게 더 의미가 있는 일이다. 불교 경전 아함경에 나오는 일화다.

더구나 한국은 지금 개울이 아닌 거친 바다를 건너야 할 참이다. 한일 갈등의 파고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미중 전쟁의 쓰나미도 몰려 오고 있다. 이미 주요 대기업의 이익은 반토막이 났다. 중산층과 자영업자 몰락은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사면초가 외교안보 고립까지 감안하면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사상 초유의 국난 상황이다. 이럴 땐 다 뜯겨 망가진 뗏목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탈 수 있는 튼튼하고 큰 배를 마련해야 한다.

조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정권이 밀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과잉 해석할 필요는 없다. 조국이 아니라도 검찰 개혁은 할 수 있다. 조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못 돼도 검찰 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있다. 더 큰 화를 피하기 위해 이젠 뗏목을 놓을 때다. 조국이 뭐길래 그리 집착하나.

박일근 뉴스2부문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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