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군 관계기관과 프로바둑기사의 병역 문제 세부 논의
군 생활과 맞물려 경기력 저하 뚜렷…대안책으로 제시
최근 침체된 바둑계 분위기 전환 노력의 일환으로도 해석
2022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채택…경쟁력 강화 포석
이달 9일 경북 안동시 그랜드호텔 특설대회장에서 열렸던 ‘제3회 참저축은행배 프로아마오픈전’(우승상금 3,000만원)에 현재 해군 병장 신분으로 출전한 국내 랭킹 29위(9월 기준) 김정현(맨 오른쪽) 6단이 22위인 최정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이 대국에서 김정현 6단은 최정 9단에게 188수만에 불계패했다. 한국기원 제공

남자 프로스포츠 선수에게 병역은 최대 관심사다. 시기상, 최전성기에 적지 않은 시간을 군생활로 보내야 된다는 점에서다. 프로바둑 기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군 입대를 기점으로 반상(盤上) 운영 능력이 하향세로 돌아선다는 건 바둑계의 공공연한 불문율. 병역 문제가 바둑계 전체 경쟁력에서 또한 부정적으로 평가 받는 이유다. 한국기원이 이 불문율과 관련, 탈피하기 위한 수순에 돌입했다. ‘상무’팀 창설에 총대를 메고 나서면서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14일 “현재 관계기관과 군 입대한 프로바둑 기사들이 병영생활을 하면서도 각종 기전 출전이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상무팀 창설을 추진 중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병영 생활을 하면서 훈련과 바둑 연구도 하고 각종 대회 출전에 문이 열린 상무팀은 바둑계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다른 스포츠는 군 문제와 관련해 운영 중인 상무팀이 있는데, 바둑계가 상무팀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바둑계 역시 스포츠로 각인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형평성 차원에서 상무팀 창설 가능성은 충분하단 얘기다. 한국기원에선 ‘상무’팀 창설이 현실화될 경우, 현재 매년 ‘KB국민은행바둑리그’에도 참전 시키겠단 시나리오까지 구상 중이다.

한국기원의 이런 행보는 최근 침체된 바둑계 출구 전략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불황과 맞물려 기업들의 후원은 급감하면서 제대로 된 국내 기전도 한 손에 꼽힐 만큼 축소됐다. 국내 간판 기전인 ‘KB국민은행바둑리그’조차 참가팀 물색에 애를 먹으면서 상반기에 이미 시작했어야 할 개막 대국은 가을(9월26일)까지 밀려난 상태다.

선수들의 경쟁력 역시 하락세가 뚜렷하다. 최근 막을 내린 ‘2019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우승상금 3억원) 대회에선 중국세에 밀리면서 4강 진출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1996년 삼성화재배가 창설된 이후, 한국 선수들의 8강전 전패는 처음이다. 중국 선수들의 선전에 따른 결과로도 해석됐지만 한국 바둑계의 경쟁력 향상이 그 만큼 시급하단 진단서로 읽혔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종합우승을 거머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다가올 아시안게임은 ‘상무’팀 창설 추진의 또 다른 현실적 배경이다. 2022 중국 항저우(杭州)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바둑은 야구 등을 제치고 37개 정식 종목에 포함됐다. 2010년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에 등장한 이후 12년 만이다. 바둑 애기가로 유명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영향력이 반영됐다는 시각이다. 한국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 주최국인 중국도 압도하고 종합우승까지 차지했다. 당시 중국은 은메달 3개에 머물렀고, 일본과 대만은 각각 동메달 1개씩에 그쳤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바둑 종목은 남자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 혼성페어전으로 열렸지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어떤 종목으로 개최될 지 미정이다. 시 주석은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앞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구겨진 중국 바둑의 명예 회복을 벼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국가 지도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열릴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상무팀 창설은 필요하단 게 한국기원측 설명이다.

병역과 관련, 현재 국내 프로바둑 기사들은 해군을 선호한다. 해군에선 2011년 2월 바둑팀 창설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해 4월 ‘해군부대내 바둑특기자 운영개선계획’도 확정한 가운데 10명 정도의 바둑특기자를 정훈병으로 선발해서 운영하고 있다. 바둑 특기자의 첫 입영은 2011년 12월에 이뤄졌다. 당시 바둑에 관심을 보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의사가 반영된 조치로 알려졌다. 이 때부터 해군에 소속된 프로바둑 기사들은 중요한 대국 일정이 잡힐 경우, 소속 부대로부터 특별 외박을 받고 나와서 경기에 임하고 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바둑 기사들도 이젠 병역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내서 양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번엔 심도 있게 진행시켜 볼 계획이다”도 말했다.

한국기원의 이런 방침에 프로바둑 기사들도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병역 의무를 마친 한 예비역 프로바둑 기사는 “다른 스포츠 선수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로바둑 기사들도 군대 문제로 경기 감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선 똑같이 걱정인 게 사실이다”며 “만약 상무팀이 창설된다면 후배 프로바둑 기사들의 경기력 향상은 물론이고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포츠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