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때 그만둔 피아노를 삼십 여년 만에 다시 배우고 있다. 레슨 첫 시간에 선생님이 연주하고 싶은 곡을 물어보셨고, 있는 대로 바흐라고 대답했고, 현재 수준보다 어려운 바흐의 인벤션을 시작해 지금 1번부터 치고 있다. 치고 있다… 치고 있다… 계속 1번만 치고 있는지 석 달째다. 바흐의 2성 인벤션은 모두 15곡인데 언제 1번에서 2번으로 넘어가 15번까지 가 볼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고작 몇 마디씩 새로 익혀 수십 번을 연습해도 아주 조금씩 나아질 뿐이다.

그래도 피아노를 치는 시간은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한데 딱 한 가지, 이웃의 괴로움이 걱정되고 미안하다. 지치지 않는 소음의 근원지가 ‘위층 아줌마’란 걸 알면 괴로움이 더할 것 같아 어린이나 청소년이 치는 척을 했는데(?) 이 시를 읽고 뜨끔해졌다. ‘위층 아줌마’란 사실도 아는구나… 하느님이 아래층 어린이의 기도를 들어주면 어쩌지… 사십 년 된 까만 피아노가 내일 아침 사백 살 먹은 족제비 붓으로 바뀐단 말인가… (보태니컬 아트라면 또 몰라도) 붓글씨는 싫다고!

어린이의 기도 중 가장 유명한 시 한 편을 다시 찾아봤다. “하느님, 이제 잠자리에 들려고 하거든요./제 영혼을 지켜 주시고/제가 만일 깨어나기 전에 죽거든/하느님, 제 장난감들을 모두 망가뜨려 주세요./다른 애들이 갖고 놀지 못하게요./아멘.”(쉘 실버스타인, ‘저밖에 모르는 아이의 기도’)

오늘 밤 나는 무슨 기도를 드릴까. 선생님께 검사받는 일기장이 아닌 책상 서랍 속 비밀 일기장이 진짜 일기장이듯 하느님 앞에서는 착한 기도가 아닌 나쁜 기도를 해야 할 텐데. 하느님 기분이 좋아야 나쁜 기도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나쁜 기도를 해야 하느님 기분이 좋아질 거다, 그게 진짜 하느님이고 진짜 기도다, 내 맘대로 생각하며 기도한다. 우선, 하느님…… 피아노 실력을 늘려 주세요, 아멘.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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