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이란의 후원을 받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군이 상대방 영토 쪽으로 박격포와 로켓, 대전차 미사일 등을 쏘아 올린 가운데, 레바논 남부 국경마을 ‘마룬 알-라스’에서 이스라엘군 포탄 투하 지점으로부터 짙은 화염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양측이 국경 지대에서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벌인 건 2006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었다. 사상자는 어느 쪽에서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군사적 긴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마룬 알-라스=AP 연합뉴스

9월 초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당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거의 전면전까지 가는 듯해 보였다. 시작은 지난달 25일 새벽 2시30분쯤(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시아파 구역)의 헤즈볼라 미디어센터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인기(드론) 공격이었다.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보복을 다짐하며 “레바논 영토로 날아드는 그 어떤 드론도 격추하겠다”고 말했다. 헤즈볼라 전문 연구자인 아말 아사드 레바논대 정치학과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공세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반격 계획을 발표한 건 처음”이라고 적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헤즈볼라가 더 이상 레바논 국내 상황에 매여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아말 교수의 지적이다. 헤즈볼라 지지세가 강한 레바논 남부와 이스라엘 북부 국경 일대에선 이달 초 수백 발의 박격포와 로켓, 미사일 등이 날아다녔다. 2006년 양측이 34일간 전면전을 치른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벌어진 국경 무력 충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면전 위기에서 시야를 돌리게 만든 건 예멘 후티 반군이다. 지난 14일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석유시설을 공격했고, 이는 곧 ‘사우디ㆍ미국 대 이란’의 갈등으로 번지면서 긴장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사건 다음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란이 사우디를 100회 이상 공격했다”는 트윗을 올렸다. 예멘 전쟁 구도하에서 일어난 후티 반군의 사우디 공격을 아예 이란의 소행으로 규정한 것이다. ‘후티가 아니라 이란’이라는 이 프레임은 미국과 사우디, 그리고 워싱턴 소재 중동연구소를 비롯한 일부 싱크탱크는 물론, 영미권 주류 언론들도 적극 채택하고 있다.

지난 14일 드론(무인기) 및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쿠라이스 유전의 모습. 미국 정부와 디지털글로브가 15일 공개한 사진으로, 이란 또는 예멘 후티 반군이 공격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투르키 알말리키 사우디 국방부 대변인도 지난 18일 “사우디 석유시설을 공격한 건 후티 반군이 아니라 이란의 드론과 크루즈미사일”이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파편 분석에서 나온 이란제 드론 ‘델타 윙’과 ‘야 알리’ 크루즈미사일을 근거로, 공격 주체를 이란혁명수비대(IRG)라고 못 박았다. 급기야 19일 알아라비야 등 친(親)사우디 언론은 “사우디가 시리아-이라크 국경인 알부 카말 지역에 있는 이란 민병대 거점을 공격했다”고도 보도했다.

지난달 하순부터 숨가쁘게 전개되는 중동 긴장의 키워드는 ‘이란의 프락시(proxyㆍ대리인)’이다. 지난 16일 블룸버그통신 사설이 ‘이란의 대리인’을 단언한 대표적 사례다. 통신은 사설에서 “후티 반군이 사우디 정유시설 공격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지만,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PMU)가 크루즈미사일을 이용해 공격에 가담했다는 의혹도 있다”며 “(그러나) 지정학적 측면에서 보면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후티 반군이나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모두 이란으로부터 돈과 물질적 지원을 받는, 이란의 대리 세력이기 때문”이라는 게 통신의 설명이다. 워싱턴포스트에 18일 게재된 ‘트럼프는 전쟁 없이 이란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도 “IRG와 헤즈볼라를 포함한 이란의 대리 세력들이 시리아에서 민간인 대상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적었다.

그런데 후티 반군과 헤즈볼라는 과연 이란의 대리인일까. 이런 프레임의 기본 구도는 이렇다. 이란과 헤즈볼라는 그동안 자신들을 ‘저항의 축’으로 자처해 왔다. 사우디와 미국, 이스라엘 등 패권국들에 맞서는 ‘저항의 연대체’라는 의미다. 그러한 ‘축’ 안에 예멘 정부 및 사우디와 싸우는 후티 반군도 포함되는 형국이 됐다. 반(反)이란 진영에서 볼 땐, 후티 반군 역시 이란의 프락시에 불과한 것이다.

지난 10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의 연설이 중계되는 가운데, 지지자들이 환호를 보내고 있다. 베이루트=로이터 연합뉴스

후티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란의 프락시”로 불렸던 헤즈볼라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보자. 이란-헤즈볼라 관계는 엄밀히 말해 이란이라는 ‘국가(state)’와 헤즈볼라라는 ‘비(非)국가조직(Non-State Actor)’ 간의 동맹에 가깝다. 통상의 분쟁지역에서 이 같은 ‘후원자(patron)-후원대상(client)’ 관계는 많다. 오히려 ‘지원군 없는 전쟁터’가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1990년대 초반 ‘무자히딘 출신’ 무장단체들이 난무했던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그랬고, 내전으로 시작돼 사실상의 국제전으로 번진 시리아 전쟁도 그렇다.

아프간 내전의 경우, 종파와 종족 등에 따라 파키스탄과 이란, 터키, 우즈베키스탄 등 주변국들이 각기 다른 무자히딘 그룹을 지원하면서 내전을 부추겼다. 수도 카불은 쑥대밭이 됐다. 8년을 훌쩍 넘긴 시리아 전쟁에서도 무수하게 뜨고 진 무장단체들이 사우디, 카타르 등 왕정국가들과 터키의 지원을 받아 왔다. 이후 자유시리아군(FSA)에 대한 터키의 지원은 공개적이고 보다 공고해졌다. 쿠르드계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도 미국과 서방국들의 군사적ㆍ외교적 지원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쿠르드 관계는 대(對)이슬람국가(IS) 전선에서의 전술적 동맹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서 ‘후원을 받는 비국가조직’을 프라시로 일컬었던 경우는 없다. 프락시라는 꼬리표는 ‘이란의 동맹 세력’에게만 달리는 경향이 있다.

다시 헤즈볼라로 돌아오자.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내고 현재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있는 제프리 펠트만은 올해 1월 기고문에서 헤즈볼라에 대해 “혁명을 거친 이란이 가장 성공적으로 수출한 사례”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계기로 창설된 헤즈볼라는 이란으로부터 물적 지원과 군사훈련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이후로는 레바논 국내 선거에도 참여, 무장단체에서 무장정당으로 변모했다. ‘비국가조직’이면서도 이스라엘과 맞댄 남부 국경을 방어한다는 점에서 보면, 국방의 책임을 수행하는 ‘국가’의 성격도 있다. 게다가 지난해 5월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레바논 총선에선 득표수로만 보면 최다 투표를 획득, 무장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헤즈볼라를 단순히 외부 특정 국가(이란)의 프락시로만 규정하는 건 무리가 있다. 지난달 말 이스라엘을 향해 보복을 다짐하고 이달 초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에 나선 건 ‘이란의 프락시’여서가 아니라, 레바논의 국익을 포함한 헤즈볼라 고유의 이해가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오른쪽) 이란 최고지도자가 지난달 13일 수도 테헤란을 방문한 무함마드 압둘-살람 예멘 후티 반군 대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후티 반군은 예멘 내전과 관련해 이란의 후원을 받고 있는 무장단체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뒤 급격히 ‘이란의 프락시’ 딱지가 붙고 있는 후티 반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후티는 예멘 북부에 기반을 둔 무장 세력으로 존재한 지 오래다. 2015년 3월 21일 쿠데타로 예멘 수도 사나를 장악하며 촉발된 지금의 내전이 발발하기 이전에도 후티는 예멘 정부와 총 6차례나 내전을 벌여 왔다. 무엇보다 예멘 내전의 배경엔 남북갈등, 남남갈등, 이념갈등 등 복잡한 정치ㆍ역사적 대립이 깔려 있다. 그러나 사우디와 아랍 동맹은 후티를 ‘이란의 프락시’로 부르면서 이를 예멘 내전 초기부터 개입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런 사우디의 주장은 과장됐다고 예멘 옵서버들은 지적한다.

다시 말하건대, 외부의 지원 세력 없는 분쟁은 거의 없다. 설령 프락시로 전락한 비국가조직이라 해도, 분쟁에 관여하게 된 자신들만의 동기와 고유한 배경이 없을 순 없다. 특히 후티 반군, 헤즈볼라는 스스로에 의한 동기부여(self-motivation)가 선명하고 강한 편이다. 이를 지워 버리고 프락시론(論)과 지정학적 잣대에만 몰입하는 건 분쟁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치명적인 오류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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