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에 나올 만한 생사를 건 결투 
 ‘활극’ 지켜보는 것은 국민의 불행 
 ‘이게 나라냐’는 탄식 안 나오겠나 
윤석열 검찰총장이 20일 점심 식사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사(檢事) 출신들은 검(檢ㆍ칼)과 관련된 비유를 즐겨 한다. ‘칼잡이’라는 별칭대로 일본의 무사들을 빗대어 소회를 표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진짜 칼잡이는 검사(劍士)다. 특히 살아 있는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 그런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검찰 특수통 칼잡이였던 최재경 법무연수원 석좌교수도 한 칼럼에서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의 독행도(獨行道)의 몇 구절을 인용하며 진정한 무사의 길에 대한 얘기를 했다.

검사 출신들에게 자주 인용되고 비유되는 무사시는 일본 전국시대 때의 전설적인 검객으로 방방곡곡을 돌며 다양한 유파의 검객들을 만나 60차례에 걸쳐 승부를 겨루었는데도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물론 30세 이전의 일이었지만 칼 한 자루를 들고 철저히 고독했고, 누구에게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은 채 홀연히 세상을 떠돌았다. 패거리가 없으니 언제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항상 뒤를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혼란이 끝나고 정치적 안정이 오면서 무사시가 기량을 펼칠 곳은 없었다. 그래서 출세를 꿈꿨지만 무사의 꿈을 이룰 수 없었던 ‘비극적 출세주의자’라는 평가도 있다. 그는 구도의 길을 떠나 방황하다 동굴 등지에서 병서인 오륜서(五輪書)를 집필한 뒤 62세에 생을 마감했다.

무사시가 남긴 ‘오륜서’(안수경 옮김)에는 무사의 생존 방식에 대해 소상히 적고 있다. 특이한 것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을 구분하는데, 이 중 사(士)를 무사(武士)로 보고 있다. 그는 병법에서 박자가 중요하다고 봤다. 특히 상대를 무너뜨리는 ‘엇박자’를 터득하지 못하면 병법을 완전히 몸에 익히기 어렵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박자로 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박자를 간파해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림자 움직이기’도 있다. 이쪽에서 먼저 강하게 공격하는 듯이 꾸며서 적의 큰 칼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청문회를 전후로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 수색과 기소 행태를 연상시킨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무사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주군의 의도를 거스른 채 홀로 결투를 위해 광야로 나선 모양새다. 지금 청와대는 물론 여당 국무총리 법무부 등이 윤 총장에게 등을 돌리거나 공격 대형을 형성하고 있다. 아군인 줄 알았는데 적이 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총장 임명식에서 윤 총장에게 주문을 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청와대든 정부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이 지금도 그런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를 총장으로 추천했던 사람들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윤 총장에게 퇴로는 없다. 태양을 등지고 칼을 꺼내 드는 것도 무사시 병법이다. “얼굴은 숙이지 않고 쳐들지 않으며, 기울이지 않고 비틀지 않는다.” 무사시의 병법으로 철저한 수사를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이렇게만 보면 무협지에나 나올 만한 생사를 건 결투처럼 흥미진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조직 내, 그것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에 생사투가 벌어지고 이를 각 정파들이 응원하는 ‘활극’을 지켜보는 것은 국가적으로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진영 논리를 선택한 것이 문제였다. 야당 정치인들이 삭발쇼를 하면서 나라를 흔들어대는 것도 꼴사납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눈곱만큼도 없고 상황을 악화시켜 정파적 이득을 챙기겠다는 심산이다. ‘이게 나라냐’는 지적은 여기서 나와야 한다.

지금 경제가 심상치 않다. 아무리 큰 정치적인 위기가 있었어도 훌륭하게 견딘 나라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변수는 물론, 세계경제가 미증유의 상황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 인구구조의 미래도 매우 열악하다.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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