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생민.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29일 충북 충주에서 열린 제1회 충북무예액션영화제 개막식에는 의의의 할리우드 스타가 참석했다. 영화 ‘블레이드’ 시리즈로 유명한 액션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였다. 전성기는 지났다고 하나 조금은 거드름을 피울 만도 한 거물이었다. 하지만 스나입스는 이날 겸손과 배려로 일관했다.

그는 무대에 올라 한국어 인사를 짧게 한 후 영어로 느리게 소감을 밝혔다. 영어가 익숙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서였다. 밤 9시가 넘어 한식 뷔페로 차려진 늦은 저녁을 먹을 때도 그는 ‘스타답지’ 않았다. 여느 참석자처럼 줄을 서서 접시에 음식을 담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뭐 별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국내외 스타들의 갑질 행각을 많이 듣고 본 터라 스나입스의 언행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스나입스를 보며 13년 전쯤 미국에서 만난 호주 배우 에릭 바나가 떠올랐다. 인터뷰를 마친 후 인터뷰 장소 밖으로 나와 무심코 뒤를 돌아봤는데 바나가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바나는 손을 들어 인사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를 초면의 기자를 위해 배웅을 나왔던 것이었다. 그는 당시 영화 ‘헐크’와 ‘트로이’ 등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친절한 톰 아저씨’라 불리는 배우 톰 크루즈 외에도 친절한 할리우드 스타는 많다.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거나 몸에 밴 직업 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품성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한국에도 겸손한 태도로 주변을 배려하는 스타들이 적지 않다. 그래도 몇몇은 그릇된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한다. 유명 연예인이 어떤 상황에서 스타의식을 발휘하는 거야 술자리 안주거리로나 삼으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 부당한 일을 저질렀을 때, 그리고 이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사회적으로 비판 받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몇몇 연예인의 언행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먼저 개그맨 장동민. 그는 지난 1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플레이어’로 구설에 올랐다.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패러디한 ‘쇼미더플레이’ 특집으로 꾸린 이날 방송에서 그는 심사위원 역할을 했다. 장동민은 여성 래퍼의 무대를 본 후 합격을 상징하는 목걸이를 들고 “원해요”라고 물었고, 출연자는 “주세요”라고 답했다. 장동민이 “저도 전화번호 원해요”라고 말하자 출연자는 “저 18살인데…”라며 난감해 했고, 장동민은 “탈락”을 외쳤다. 시청자를 웃기려다 돌발적으로 나온 발언이라 해도 매우 부적절했다. 합격을 담보로 한 이성간 만남을 미성년자에게 종용하는 듯한 말이어서다. 장동민은 이전에도 여성과 한부모 가정을 비하하고, 삼풍백화점 생존자를 모욕적으로 표현해 물의를 빚었다. 문제 연예인을 기용한 제작진의 무신경을 우선 지적해야겠지만, 인기에 함몰돼 자성하지 않는 당사자의 잘못이 더 크다.

지난 14일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 개그맨 김생민은 더 심각한 경우다. 그는 2008년 방송프로그램 녹화 후 회식자리에서 여성 스태프를 성추행한 사실이 지난해 4월 미투(#MeToo) 운동 와중에 알려지면서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김생민의 소속사 SM C&C는 “공식적인 방송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극히 사적인 활동”이라고 보호막을 쳤다. 근검절약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 방송을 토대로 인기 정점에 올랐던 김생민의 이력을 감안했을 때, 이번 방송이 과연 사적 활동에 불과한 것일까. 소속사는 “(김생민이) 아껴주셨던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렸던 점에 대해서는 늘 죄송한 마음”이라고도 전했다. 김생민의 복귀에 가장 상처 받을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한 인간의 인격을 시험해보려면 그에게 권력을 줘보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을 이렇게 변형해 보고픈 요즘이다. “한 연예인의 인격을 알고 싶으면 그에게 인기가 생긴 뒤를 보라.”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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