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2ㆍLA 다저스)이 아시아 출신 투수가 정복하지 못한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최초로 가져갔다. 평균자책점은 투수 능력 중 으뜸으로 평가 받는 항목으로 한국 야구보다 수준이 높다는 일본 투수 44명을 비롯해 한국 투수 12명, 대만 투수 11명까지 총 67명이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모두 빅리그의 높은 벽에 부딪쳤다.
류현진에 앞서 가장 1위에 근접했던 투수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전 다저스 동료 노모 히데오(일본)였다. 노모는 1995년 당시 2.54를 찍어 그렉 매덕스(1.63), 랜디 존슨(2.48)에 이어 메이저리그 전체 3위에 자리했다. 평균자책점을 제외하고 아시아 투수가 주요 타이틀을 챙긴 건 탈삼진에서 1995년과 2001년 노모, 2013년 다르빗슈 유(일본), 다승에서 2016년 대만 왕첸밍(19승)이 있었다.
류현진은 29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와 정규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 7이닝 5피안타 7탈삼진 무4사구 무실점 역투로 팀의 2-0 승리를 이끌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평균자책점 2.43을 기록 중인 추격자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에게 0.02 차로 쫓겨 1위 수성을 위한 압박이 컸지만 류현진은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2.41에서 2.32까지 떨어트렸다.
시즌 내내 경이로운 1점대 평균자책점을 찍다가 8월 한달 간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7.48로 부진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경쟁에서 뒤처진 것은 아쉽지만 아시아 투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전체 평균자책점 1위라는 새 역사를 썼다. 올 시즌 류현진의 성적은 29차례 등판해 14승5패 평균자책점 2.32다. 14승은 2013년과 2014년 개인 최다승과 타이, 이닝(182.2)은 2013년 192이닝을 던진 이후 가장 많이 소화했다.
8월 부진을 털고 시즌 마지막 3경기에서 눈부신 투구를 이어간 ‘코리안 몬스터’의 모습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 언론은 일제히 사이영상 유력 후보로 류현진을 지목했다. 오렌지카운티레지스터는 “류현진이 사이영상을 받을 만한 투구를 보였다”며 “사이영상 선두주자였다가 최근 미끄러졌는데, 이날 호투로 판도를 다시 흔들었다”고 보도했다. 또 LA 타임스는 “샌프란시스코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사이영상 이력서를 완성했다”고 전했고,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닷컴은 “사이영상 수상에 마지막 입찰을 했다”고 설명했다.
사이영상은 류현진보다 디그롬에게 무게가 실린다. 디그롬은 류현진보다 3승 적은 11승(8패)을 수확했지만 32경기에서 204이닝을 던졌고, 탈삼진도 255개로 1위를 굳혀 2년 연속 사이영상을 예약했다. 주요 지표에서 류현진이 내세울 수 있는 건 평균자책점뿐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디그롬이 ‘투수들의 무덤’인 쿠어스필드에 한 차례도 등판하지 않은 것을 흠으로 지적했다. 반면 류현진은 쿠어스필드 등판을 피하지 않고 두 차례 등판해 1패 평균자책점 6.30(10이닝 7실점)을 기록했다. 둘은 지난 15일 시티필드에서 선발 맞대결을 펼쳐 나란히 7이닝 무실점으로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역사적인 시즌을 보낸 류현진은 사이영상에 크게 개의치 않아 하며 “성공적인 한 해였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최종전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30경기 정도 등판하고 싶었는데 근접한 29번을 했다”며 “평균자책점 1위는 기대하지 않은 깜짝 선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엄청난 노력을 입증한 증거”라고 덧붙였다. 사이영상 관련 질문에는 “디그롬이 받을 만하다”며 “모든 기록을 고려할 때 디그롬은 놀라운 한 해를 보냈다”고 상대를 예우했다.
정규시즌 일정을 마무리한 류현진은 내달 4일부터 막을 올리는 포스트시즌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를 준비한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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