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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고령사회와 상속제도 정비

입력
2019.10.05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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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시장이 커지면서 인식도 변하고 있다. 상속은 부유층이나 가업승계자의 관심사라는 인식에서 보통 사람에게로 확산되고 있다. 고령자의 증가로 상속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는데 현 제도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상속시장이 커지면서 인식도 변하고 있다. 상속은 부유층이나 가업승계자의 관심사라는 인식에서 보통 사람에게로 확산되고 있다. 고령자의 증가로 상속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는데 현 제도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상속시장이 커지고 있다. 2017년에 14조원의 상속재산이 있었는데 결정세액이 2조4,000억원이다. 2008년 대비 2017년에 피상속인 수는 1.7배 증가했고 결정세액도 1.8배 증가했으니 매년 6.5% 성장한 셈이다. 전체 피상속인 중 약 절반이 80세 이상으로 고령자 피상속인이 많아지고 있다. 향후 80세 이상 인구가 2017년 150만명에서 2027년 260만명, 2037년 430만명으로 증가하면서 상속시장이 급속하게 확대될 전망이다.

인식도 변하고 있다. 상속은 부유층이나 가업승계자의 관심사라는 인식에서 보통 사람에게로 확산되고 있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상속에 대한 의향을 물었을 때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비중이 2008년 12.7%에서 2016년에는 25.1%로 2배에 달했다. 이처럼 상속환경은 변화하지만, 과거에 만들어진 상속관련법은 이를 따르지 못해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유류분 제도다. 이는 법에 의해 상속인에게 보장되는 최소한의 상속재산(배우자나 자녀의 경우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속인의 생계보호 차원에서 1977년에 도입되었다. 당시는 장자 중심의 상속이 주를 이루고 남겨진 자녀가 어리다 보니, 장자가 아닌 상속인은 배제되어 생계를 위협받는 경우가 있었다. 약자 보호 차원에서 도입된 좋은 취지의 법이었다.

하지만 장수로 인해 상속인의 나이가 많아지고 소득이 증가하다 보니 생계를 위협받는 경우가 과거에 비해 줄었다. 그 대신 부작용이 부각되고 있다. 두 아들 중 장남은 돈을 잘 버는데 차남은 장애로 생계가 쉽지 않아 재산을 차남에게 모두 물려주려 하지만 장남이 유류분 청구를 하게 되면 법적으로 보장된 금액을 주어야 한다. 막심한 불효 자식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부모를 잘 부양하는 자식에게 상속재산을 많이 주겠다는 ‘전략적 상속’도 쉽지 않다. 자칫하면 그 부양 부담을 국가가 져야 할지 모른다. 얼마 전 사망한 미국의 호텔왕 배런 힐턴(Barron Hilton)이 유산 97%를 자선재단에 기부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자녀가 권리를 주장하면 유류분을 줘야 한다.

생존 배우자와 자녀 간의 다툼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속재산이 주택인 경우가 많다. 집 한 채를 남겼는데 자녀와 생존 배우자가 상속을 받으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생존 배우자는 살던 집을 팔고 나가야 하는 일도 일어난다. 혹은 주택연금을 받다가 본인 사망으로 배우자가 연금을 이어받으려면 자녀가 동의를 해주어야 한다. 동의하지 않으면 난감한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에 재혼이 많아지면서 생존 배우자와 자녀 간 다툼이 많아졌다. 일본은 2018년에 민법을 개정하여 ‘배우자 거주권’을 인정하여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택은 유산 분할에서 제외하여 남겨진 배우자가 거주할 권리를 인정한다.

배우자의 상속분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상속시에 생존한 배우자는 공동상속인 상속분의 2분의 1을 더 받게 되어 있는데, 배우자의 경우 상속분도 적어지고 상속세도 내야 하니 차라리 생전에 이혼을 해서 재산을 반 나눠 가지는 게 낫다. 자칫하면 상속제도가 황혼 이혼을 부추길 수도 있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다른 이슈들도 많다. 지방의 피상속인 재산이 상속으로 수도권에 있는 자식에게로 이전되면서 수도권에 부가 더 집중될 수 있다. 90대 부모가 60대 자녀에게 상속하는 ‘노노(老老) 상속’이 보편화되면 사회에 돈이 잘 흐르지 않게 된다.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상속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상속은 개인 차원을 넘어 경제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현 상속 관련 제도는 수명이 짧고 소득이 적을 때 만들어진 것이 많아 정비가 필요하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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