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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에 꼭꼭 숨었다, 기적처럼 치솟은 장밋빛 불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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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에 꼭꼭 숨었다, 기적처럼 치솟은 장밋빛 불가사의

입력
2019.10.23 00: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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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신비 간직한 요르단 고대 도시, 페트라

해발 950m 바위산에 숨은 고대도시, 페트라는 요르단 여행의 핵심이다. 사막 한가운데 넓은 면적에 분포해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은 걸린다. 암벽 협곡인 ‘시크’를 지나 ‘카스르 알빈트’까지 주 탐방로 4km를 걷고, 이곳에서 다시 페트라의 숨은 보석이라는 ‘아드데이르’까지 800여 계단을 올랐다. 끈끈한 바람과 풀리지 않는 역사가 무심히 마중 나왔다.

페트라의 시간 여행은 방문자센터에서 시작된다. 이륙 준비도 하기 전에 착륙인가. 모래 색 암벽 구릉이 길게 이어지고 고대 건축물이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독한 이질감이다. ‘21세기’ 출입문을 지나자마자 ‘기원전’의 도시로 뚝 떨어지다니. 페트라는 2,000년 전 무역에 능통했던 나바테아인의 보금자리다. 부귀영화를 누렸던 고대의 수도로, 특정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가리킨다. 넓고 크고 때론 가파르다. 터번을 두른 남성이 서 있는 것만으로, 시간과 공간 감각에 깊은 혼란이 왔다. 대체 우린 어느 별로 밀려온 걸까.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탐방로에 늘어선 당나귀가 발품을 줄이라는 듯 유혹한다. 그 사이 뚜벅이 여행자는 사각 탑 형태의 무덤과 오벨리스크를 지난다. 이내 하늘이 좁아지는 협곡이 시작된다. 검붉은 긴장이 감돈다. 붉으락푸르락한 협곡의 조각상이 길을 더 좁힌다. “덜커덩 덜커덩” 협곡에 갇힌 마차 소리가 웅장하게 울린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한 암벽과 밀도 차가 큰 퇴적층의 결이 이어진다. 앞으로 나가다가 뒷걸음치고 자꾸 기웃거리게 된다. 나바테아인의 천재성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메마른 사막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로가 현재도 건재하다. 암벽에 손끝을 스치며 채 걷는다. 이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1.2km에 달하는 협곡 시크는 페트라의 신비를 증폭시키는 관문이자 본격적인 모험의 출발점이다.

협곡으로 좁아진 시야가 열리는 곳, 알카즈네다. 빛의 은총을 받아 붉게 개화하듯 절벽에 새겨져 있다.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끝까지 젖힌다. 알카즈네는 바위에 깊이 조각된 높이 약 39m, 너비 25m의 건축물이다. 기원전 1세기경 건설되었다는 사실 외엔 믿거나 말거나 한 가설과 전설뿐이다. 나바테아 왕의 무덤이라거나 파라오의 유물이 숨겨졌다는 설도 있다. 페트라의 건축물은 가까이서 볼수록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손으로 바위를 깎은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하다. 이토록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건 ‘망각’ 덕분이었다. 페트라는 지진으로 멸망한 후 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깊은 암벽 산에 몸을 숨긴 채 잊혀져 왔다.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다시 세상에 알려졌지만, 여전히 잃어버린 도시다. 요르단 야르무크 대학의 고고학자 알 무헤이센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굴한 면적은 도시 전체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더 큰 진실은 미래의 숙제로 남아 있다.

주 탐방로를 따라 걷는 페트라는 두 가지 이유에서 발랄하다. 첫째는 호객꾼 때문이다. 초입부터 말ㆍ낙타ㆍ당나귀 중 하나를 골라잡으라는 식이다. 호객은 성행하되 불편하지 않다. “페라리? 아니면 람보르기니?” “에어컨이 빵빵해” 따위의 농담으로 땡볕을 잠시 잊게 한다. 둘째는 ‘인생사진’ 성지로 입소문이 난 까닭이다. 역사를 몰라도 존재 자체로 빛나는 페트라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연광과 암벽 건축물이 기념 사진을 남기려는 욕구를 마구 부채질한다. 뭇 여인들의 고된 드레스 행렬도 이어진다. 그때마다 심히 ‘캐주얼한’ 자신의 복장을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알카즈네를 지나면 파사드 거리다. 바위산은 여전한데 하늘이 완전히 개방된다. 좌로는 원형극장, 우로는 여러 형태의 왕가 무덤이 겹친다. 능선을 따라 지어진 원형극장은 서기 106년 로마에 합병된 역사의 단초다. 95m 반경, 45개의 열 앞에 서면 그 옛날 7,000 관중의 환호를 압축한 거센 바람이 분다. 왕가의 무덤군으로 올랐다. 적당히 건너뛸 요량이었는데 또 발목을 잡는다. 무덤마다 아시리아와 그리스, 로마의 여러 양식을 수용해 고대 건축 양식을 한곳에서 탐미할 수 있다.

주 탐방로는 페트라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카스르 알빈트(Qasr Al-Bint)에서 끝난다. 그렇지 않아도 녹초가 될 판인데 태양마저 가장 뜨거운 시간이다. 1.5리터의 물도 소진된 지 오래다. 돌아갈 것인가, 계속 갈 것인가. 직진하면 페트라의 숨겨진 수도원 아드데이르(Ad-Deir)로 가는 길이다. “택시 탈래?” 낙타의 유려한 등허리가 유혹한다.

목적지까지는 약 1.25km, 탐방 안내도에는 ‘힘듦(hard)’이라 기록돼 있다. 왕복을 해도 고작 2.5km인데, 2시간30분~3시간이 걸린다고? 눈앞에 맛보기처럼 탐탁지 않은 계단이 보였다. 더 붉은빛 사암에 외진 길, 무조건 오르막이다. 인적도 크게 줄었다. 계단은 좁다가도 넓게, 높다가도 낮게 변주되고 불규칙하다. 한때 페트라는 오직 죽은 자들을 위해 지어진 도시라는 설이 나돌았다. 이 길에도 접근하기 어려운 무덤이 이어진다.

덥다. 그리고 뜨겁다. 그나마 열을 식히는 건 베두인족 상점이다. 반 정착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은 페트라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이곳의 주인이었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모두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일부에게 동굴에서 거주하거나 장사할 권한이 주어졌다.

절벽 앞 상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나무 지붕 아래서 얼얼한 물로 목을 축였다. 21세기 페트라의 계절은 성수기와 비수기로 나뉜다. 한 주일 중 일요일이 가장 한가하다. 성수기는 3~4월과 9~10월, 기후가 온화한 시기다. 이때는 아드데이르 탐방로에만 하루 5,000~6,000명의 세계인이 발 도장을 찍는다. 단체 관광객은 대부분 주 탐방로만 기웃거리다가 돌아가는데도 이 정도다. 완강하게 거부했던 ‘택시’를 간절히 원하게 되는 지점인데, 오늘 이 길의 베두인족은 탐방객이 물건을 사든 말든, 나귀를 타든 말든 관심이 없다. 힘을 줄 요량인지 상점 주인이 한마디 거든다. “30분만 더 가면 돼.” 이미 다른 여행자에게 여러 번 들었던 말이다.

다시 걷는다. 여긴 아드데이르로 오르는 약 800여 계단의 어디쯤일까. 인간의 한계를 참 고되게 시험하는 길이다. 계단 하나하나가 수도의 길이다. 더 좁고 가파른 길을 오르다가 암벽이 뒷걸음질 치는 시점에 다다르자 급작스레 시야가 개방된다. 거센 바람이 밀려오고, 앞선 여행자의 시선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한다. 드디어 아드데이르다. 준비할 새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알카즈네와 달리 클라이맥스를 감당할 시간을 주듯 탐방로에서 우회해야 모습을 드러낸다. 단아한데 웅장하다. 섞일 수 없는 형용사의 조합이다. 바위산에 꽁꽁 숨은 폭 47m, 높이 48.3m의 건축물이 땅에서 기적처럼 치솟은 듯하다. 나바테아의 왕 라벨 2세의 무덤이었다가 비잔틴 시대에는 예배 장소로 활용되었다고 짐작되는 유적이다. 찬찬히 보자 하니 기우는 햇살에 장밋빛이 감돈다.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은 페트라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붉은 도시(a rose-red city half as old as time).”

탐방로는 와디 아라바(Wadi Arabah)로 이어지는 낭떠러지까지 계속된다. 현재 발굴된 페트라만 둘러봐도 일주일은 꼬박 걸릴 거라는 관리자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세상의 끝에 섰다. 거친 사암이 드라마틱하게 뻗은 먼 산자락 뒤로 사해가 일렁거렸다. 심장이 뛴다. 진짜 사는 것 같다. 오롯이 나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게 된다. 바로 지금을 곱씹고 되뇌는 것, 그리고 깨어 있는 현재에 감사하는 것, 고대 도시 페트라가 안기는 또 다른 선물이었다.

오후 6시30분경, 돌아오는 길의 페트라는 아직 끝나지 않은 오늘을 찬미하듯 마법의 빛깔로 탐방객을 배웅했다. 짙은 그림자로 다른 옷을 입는다. 태양이 마지막으로 검붉은 기염을 토해내고, 달이 떴다.

[요르단 여행 정보]

현지에선 요르단을 모두 ‘조르단’이라 발음한다. 요르단 여행은 일단 꽤 큰 돈을 지불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단수 비자 가격은 40디나르(약 7만2,000원), 페트라 및 기타 관광지 입장권을 포함한 ‘조르단 패스’ 가격은 70디나르(12만6,000원)다. 하루 연장(3일 제한)할 때마다 5디나르(9,000원)가 추가된다. 환불이나 변경 자체가 불가해 고민에 빠질 법한데 최소 2일권을 추천한다. 배낭여행객을 위한 인프라는 품질이 떨어지는 편이다. 2인 기준 저렴한 숙소 가격이 보통 15~25디나르(2만7,000~4만5,000원)다. TV와 에어컨, 냉장고가 있다 해도 대부분 구식이다. 와이파이는 기대하기 힘들다.

※여행가 강미승(뿌리다)은 프랑스인 남편 알베(탕탕)과 함께 지난 5월부터 1년 계획으로 세계를 여행 중이다. 중동에서 시작해 남태평양을 거쳐 남미에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한국일보닷컴에 둘의 여행기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을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전체 기사를 볼 수 있다.

글 강미승 여행가ㆍ사진 알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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