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블랙홀로 두 달여간 다른 이슈 묻혀
벼랑 끝 사람들 살리는 것보다 더 중한가
당쟁으로 임진왜란 부른 과거 되풀이 우려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조국 장관을 수호하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지난 8일 경기 시흥시의 한 주택에서 40대 가장과 부인, 어린 두 자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선 ‘미안하다’는 유서가 나왔다. 그 일주일 전엔 제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마흔 살 안팎의 부부가 초등학생 자녀 2명과 함께 세상을 등졌다. 이 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간 상태였다. 지난달엔 대전에서 40대 남자가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집을 찾아가 보니 30대 아내와 10살도 안 된 아들과 딸까지 숨져 있었다. 사업에 실패해 사채를 쓴 그에게선 ‘경제적 문제로 힘들다’는 메모지가 나왔다. 8월초엔 서울 봉천동에서 탈북 모자의 시신이 발견된 소식도 전해졌다. 통장 잔고는 3,858원이 인출된 뒤 0원이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늘면서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1만3,670명에 달했다. 하루 37명꼴도 넘는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감히 ‘욕심’도 못 낼 일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 기간 중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신생아 수)은 0.98명까지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이 사라질 판이다.

경제도 무너지고 있다. 7월 실업자 수는 109만7,000명이나 됐다. 2000년 이후 최고 실업률(3.9%)이다. 월간 수출액은 10개월 연속 감소세(전년동기대비)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이 한계에 봉착한 가운데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삼성조차 반도체를 이을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재벌가 2,3세에게선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이나 절박함을 찾아볼 수 없다.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담은 더 커졌다. 한계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버텨낼 재간이 없다. 이렇게 중산층이 추락하고 있는데도 강남 아파트 값은 자고 나면 오른다.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의 골은 더 깊어졌다. 암울한 미래에 국운이 쇠하기 시작한 것 아니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지난 두 달 여간 나온 우리의 민낯을 되짚어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명(8월9일)한 이후 이런 중차대한 사안들이 제대로 조명조차 받지 못한 채 묻혔다는 생각 때문이다. 온 나라가 조국 정국에 매몰된 사이에도 힘 없는 이들의 극단적 선택은 이어졌고 한국 경제의 붕괴는 계속됐다. 장관에 누굴 임명하고 사퇴시키느냐 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얘기다. 백성의 목숨을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과연 나라님에게 있을까. 거악은 놔 둔 채 한 가족의 인턴증명서 위조를 파헤치겠다며 검찰력을 총동원하는 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더 중할까.

문 대통령은 조 장관이 부적절하다는 여론에도 그를 임명했다.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장관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본다. 이를 용납할 수 없다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면 될 일이다. 이러한 때 검찰이 무리한 압수수색을 하고 청문회 중 한밤 기소를 한 것은 지극히 정치적인 도발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선을 넘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때처럼 어떤 불행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서초동 촛불을 불렀다.

그러나 광장 세 대결이 벌어지고 조국 사태로 다른 사안들이 모두 잊히는 것은 더 이상 곤란하다. 다행히 촛불도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이젠 일상에서 잃어버린 2개월을 만회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그 사이 소외된 우리 이웃을 살피고 국가적으로 더 중요한 사안도 챙겨야 한다.

400여년 전 조선 시대 당쟁의 시작은 정5품 이조전랑 자리에 누구를 앉히느냐를 둘러싼 찬반 대립이었다. 그렇게 나라가 두 쪽 나 소모적 논쟁을 벌인 지 얼마 후 일어난 게 임진왜란이다. 지금 동북아 정세도 그 때만큼 심상찮다. 중국은 역대 최대 규모 열병식을 통해 힘자랑을 했고 일본은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갈 참이다. 그런데도 우린 달팽이 뿔 위의 싸움(蝸牛角上之爭)만 벌이고 있다. 더구나 그 달팽이는 자신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것 같다.

박일근 뉴스2부문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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