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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부정죄’가 위안부 모욕, 5ㆍ18 왜곡을 근절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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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부정죄’가 위안부 모욕, 5ㆍ18 왜곡을 근절시킬 수 있을까?

입력
2019.10.15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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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토론회서 역사 부정세력에 선전효과 등 줄 수 있다는 우려 나와 

연세민주동문회가 지난 10일 연세대에서 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한 류석춘 교수 규탄 집회에서 류 교수의 즉각적인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연세민주동문회가 지난 10일 연세대에서 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한 류석춘 교수 규탄 집회에서 류 교수의 즉각적인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3명은 ‘5ㆍ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 ‘5ㆍ18유공자는 괴물집단’이라는 망언을 했다. ‘반일종족주의’의 이영훈 사단과 류석춘 연세대 교수는 학문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의 일환’이라는 왜곡된 주장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사회적 비난이 쏟아져도 이들의 망언은 사라지기는커녕 교묘하게 진화한다. 정치적 제재도, 학계의 논쟁도 일회성으로 지나가는 탓이다. 이에 근본적 대책으로 망언 행위자를 사법적으로 처벌하자는 게 이른바 역사부정죄 발의 움직임이다. 이미 국회에선 5ㆍ18 역사 왜곡 처벌법 논의가 시작됐고, 국민 절반 이상이 역사부정죄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학계에선 역사부정죄를 통한 법적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고, 오히려 이 같은 규제가 망언 행위자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 11일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소장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 주최로 열린 ‘역사부정론자 법적 처벌, 바람직한가?’라는 토론회는 역사부정죄의 발전적 방향성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발제자로 나선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먼저 유럽에서 시행되는 역사부정죄와 비교해 한국의 역사부정죄의 법적 정당성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체코, 프랑스, 독일, 폴란드, 스위스 등 18개 국가에서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 부정을 처벌하는 법이 존재한다.

이들 국가의 역사부정죄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의 사실관계를 부인, 왜곡 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보다는 △반인륜적 범죄행위의 피해자와 그 후손들의 명예 보호 △국제질서와 헌정질서의 근간인 인간존엄 보호 △역사 부정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확장되는 걸 막기 위해서 정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한국은 대부분이 ‘진실 논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여러 역사적 사건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보수 진영에선 민주화 운동뿐 아니라,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라고 내세우며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홍 교수는 “역사부정죄는 현재적 문제를 다루는 법적 조치일 때,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역사부정죄가 역사 부정 세력들에게 오히려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 역사부정세력이 처한 위치는 ‘특이하고 기형적인 기억주장이 공식기억의 역사 재현에 훼방 놓는 구도’라고 전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부정죄로 법정에 회부된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대항기억이 공식기억에 의해 억압됐다는 논리를 펴며 소수자 역할을 자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기억도 법으로 보호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승자와 패자가 명백하게 갈리는 법정 다툼의 속성상, 오히려 역사부정세력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지적됐다. 이 교수는 “역사부정세력이 무죄판결을 언도 받았다고 해도 발언의 정당성을 부여한 게 아니라 현행법에 따라 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뿐인데, 지만원씨만 해도 무죄를 받고 ‘내 말이 옳다’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데이비드 어빙이 법정 싸움에서 할 말을 다하고 영웅이 됐던 사례와 비슷한 경우”라고 지적했다. “역사부정죄가 그들에게 이겨도 이기고, 져도 이길 수 있는 상황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홍성수 교수와 이소영 교수는 법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해결해서도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홍 교수는 “유럽국가들이 역사 부정 문제 해소를 위해 역사부정죄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오해해서 안 된다”며 “형사처벌은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교육 자율 규제 등 다양하고 근본적인 해법인 비형사적 규제 방안을 끈질기게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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