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이면서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라는 지위, 저자에게 경계인으로서 최초의 자각은 상아탑에서였는지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글이란 무엇일까, 글쓰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83년생 김민섭 작가의 이 신작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저자는 4년 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에세이집을 내면서 대학을 벗어나게 됐다. 첫 책을 낼 때 그는 실명이 아닌 ‘309동1201호’라는 필명을 썼지만, 그 책은 그의 이름 석자를 기억하게 했다. 이후로 1년에 한 번 꼴로 ‘대리 사회’ ‘아무튼, 망원동’ ‘훈의 시대’를 내왔다.

저자는 새 책에서 글을 쓰는 자신의 정체성을 ‘경계인’으로 집약했다. 그것은 아마 상아탑에서 교수로 불리나 교수가 아닌 지위인 시간강사의 경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대학을 나와 1인 출판사를 차리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접어들어서도 그는 여전히 경계인이다. 작가이면서 대리운전 알바, 1인출판사를 차린 출판인이다. 맥도날드에서 파트타임 노동을 하며 시간강사를 했듯 말이다.

경계인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단상들이 책의 주요 소재가 됐다. 이를테면, 대리운전 콜에 뜨는 “젊은 대리 기사 불러주세요”라는 손님의 요청 메시지에 담긴 함의. 경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50대 이상의 ‘아재 기사’를 선호할 것 같은데 왜 젊은 기사를 배정 받길 원할까. 조용히, 편하게 가고 싶다는 손님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다. 손님의 의사와 상관없이 훈계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쏟아내는 ‘아재 기사’들이 많으니 말이다. “아재들은 자신의 권력을 조금 더 검열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껏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온 세대는 별로 없다. 이제 비로소 그 시선을 인식하게 된 이들이 ‘아프다, 외롭다, 혐오를 멈춰라’ 하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공감을 자아내지 못한다.”

우리 시대 자본의 품격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시인, 작가, 연구자의 처지에 빗대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최영미 시인이 2017년 페이스북에 쓴 아만티 호텔 글을 인용했다. 글은 시인이 아만티 호텔에 이메일을 보내 ‘방 하나를 1년간 사용하게 해주신다면 평생 홍보대사가 되겠다’고 했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50만부가 넘게 팔린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된 시인이 왜 그런 생활고를 겪는지에 관심을 둔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젊은 연구자들의 가난이 떠오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최영미 시인의 말마따나 우리는 아직 웃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그 낭만에 돈을 지불할 의사는 더욱 없다. 많은 이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주머니가 열리는 모습을 보는 것조차 참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왜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가난하게 만드는지, 그 가난의 모습이 여기에 모두 담겨 있다.”

이 외에도 정의롭지 못한 대학과 청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시종 담담한 어조로 책에 녹아있다. 그것은 너무나 객관적이어서 차가운 방관자와는 다른, 경계인의 시선이다. “나는 이제 시간강사도 아니고, 청년도 아니고 나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실 완벽한 중심도 주변도 없다. 우리는 모두 경계인이었다. 의식적으로 한발 물러서서 자신의 모습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관조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한 자기규정이 우리를 경계인으로서 타인을 감각하며 살아가게 할 것이고, 다음 세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경계인이라는 자각에서 느슨한 연대는 시작된다는 저자의 믿음이다.

경계인의 시선
김민섭 지음
인물과사상사 발행ㆍ252쪽ㆍ1만5,000원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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