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을 강타한 지 나흘째인 지난 15일, 일본 중부 나가노시의 한 마을이 물바다로 변해 버린 모습. 폭우로 인해 제방이 붕괴되면서 인근 지쿠마강이 범람한 탓이다. 나가노=교도 연합뉴스

태풍 19호 ‘하기비스’가 일본 열도를 강타하고 지나간 지 일주일째지만,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침수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하면서 복구 작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사망ㆍ실종자를 포함한 인명 피해가 90명을 넘어선 가운데, 사망자 다수가 고령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해 약자’에 대한 문제가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18일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65명) 중 절반을 넘는 33명이 70대 이상 고령자였다. 침수와 토사붕괴 등의 피해를 본 주택에서 발견된 시신은 총 32구였는데, 이 중 70대 이상은 20명(62.5%), 60대를 포함하면 27명(84.3%)이었다. 숨진 고령자 중에는 침수를 피하기 위해 자력으로 대피소 또는 높은 곳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았다.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후쿠시마(福島)현 이와키(いわき)시에선 86~100세인 고령자 5명이 집 안에서 익사했다. 이 중 한 명인 세키네 오사무(関根治ㆍ86)씨는 붕괴된 제방으로부터 300m 정도 떨어진 단층 주택에서 부인 유리코(百合子ㆍ86)씨와 생활해 왔다. 폭우가 쏟아진 12일 밤 유리코씨는 일찍 잠에 들었다가 화장실에 가려던 중 침수가 시작된 것을 발견했다. 거동이 불편한 남편과 함께 옆방 침대 위로 대피하려 했으나 침대 위에서 남편의 손을 잡아당기는 순간, 갑자기 수위가 상승하면서 오사무씨는 물 속에 잠기고 말았다. 홀로 침대 위에 서 있던 유리코씨의 목까지 물이 차올랐지만 이후 수위가 낮아지면서 구조됐다.

고령자와 신체의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 등 ‘재해 약자’를 위한 지원책 마련은 이전부터 큰 과제였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사망자의 60%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자였고, 장애인 사망률이 일반인의 두 배를 넘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13년 재해기본법을 개정, 지방자치단체가 대피 등에 지원이 필요한 ‘대피행동요지원자’ 명부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재해 약자의 대피를 돕는 지원자를 정하고, 개별 대피 계획을 만들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지원자를 찾기 어렵고 고령인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개별 대피 계획을 갖춘 지자체는 2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번엔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정도’라고 할 정도의 기록적인 폭우에다, 심야에 제방이 붕괴된 곳이 많았다. 태풍이나 폭우는 불시에 발생하는 지진에 비해 예측이 가능한 만큼, 대피 지시를 기다리지 말고 권고 단계에서 대피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고령자나 장애인이 있는 가정의 경우엔 과거의 경험에만 기대지 말고 재해 경보가 발령될 때부터 지자체나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서둘러 대피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정보 전달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태풍 때에도 사망자 중 40% 이상이 침수나 토사 붕괴 피해가 발생한 주택에서 발견됐고, 30%가 자동차로 대피하던 중 사망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태풍이 접근하기 전에 대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전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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