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기재1차관 “특혜 유지 여부 고민 필요” 지위 포기 강행 시사 
농업인단체가 2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와 농업인단체 간 간담회에서 'WTO 개도국 포기 방침 철회' 피켓을 들고 정부에 농업인단체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 확정에 앞서 정부가 농민단체와 간담회를 열었으나 회의 공개 여부를 놓고 대립하다 결국 성과 없이 끝났다. 다만 정부는 이 자리에서도 “향후 전개될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는다는 방침(본보 21일자 1면)을 재차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는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김용범 1차관 주재로 민관합동 농업계 간담회를 개최했다. 논의 주제가 ‘우리 농업 현실 및 정부 농업정책에 대한 농민 의견 수렴’이었으나, 사실상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확정 발표에 앞서 농업인에 대한 지원책을 건의 받기 위한 간담회였다.

회의에는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농업인단체연합회 △축산관련단체협의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한국낙농육우협회 △한국토종닭협회 등 농축산업단체 대표들이 대거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기재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김 차관은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19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계기로 농업분야에서만 예외적으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아 왔다”며 “그러나 지금은 당시에 비해 경제 위상이 크게 높아졌고, WTO 내에서도 해당 이슈가 본격적으로 논의됨에 따라 미래에 전개될 WTO 협상에서도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간담회는 김 차관의 모두발언 이후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농민단체들이 간담회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농축산업단체 대표들은 정부가 이미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결정해 놓고 형식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들으려 한다는 불만을 내비쳤다.

김 차관이 “공개 회의가 되면 자유롭게 토론하기 어렵고 논의가 더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제 경험”이라고 설득했으나 참석 단체장 중 일부가 퇴장하는 등 파행 끝에 종료됐다. 김 차관은 회의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 결정 시기에 대해 “정부로서는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해 조만간 결정을 내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등을 직접 언급하며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WTO에서 개도국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미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 트럼프는 당시 “90일 이내에 개도국으로 간주되는 국가의 수를 제한하는 것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이 있지 않을 경우 미국은 일방적으로 행동하겠다”고 했는데, 그 시한은 오는 23일이다. 정부는 23~24일 기재부 종합국감이 끝나는 대로 2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해 차기 WTO 협상 때부터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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