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시리아 북부 카미실리에서 이곳을 떠나는 미군 군용 차량을 향해 현지 주민들이 감자와 돌멩이 등을 집어 던지며 분노를 표하고 있다. 현지 쿠르드 매체 안하 하와르가 공개한 동영상의 캡처 화면이다. 카미실리=AP 연합뉴스

“미국이 쥐새끼처럼 줄행랑을 치네(Like rats, America is running away).”

21일 오전(현지시간) 터키 국경과 인접한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거주 지역인 카미실리. 성조기를 단 미군 군용 차량들이 줄을 지어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한 주민은 아랍어로 이같이 외쳤다. “미국 반대(No America)” “미국은 모두 거짓말쟁이(All America Liar)”라는 분노의 목소리도 들렸다. 성난 주민들은 차량 행렬을 향해 토마토 등 썩은 과일과 감자, 돌멩이 등을 계속 던졌고, 맨몸으로 서행 중인 장갑차를 막아서는 이도 있었다. 쿠르드 매체 안하 하와르가 공개한 영상에 담긴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 현장 풍경이다. 5년 전 꽃과 박수를 받으며 이 지역에 발을 디뎠던 미군이 이제는 온갖 비난과 야유에 휩싸인 채 굴욕적인 모습으로 퇴장하는 것이다.

AP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날 100여대의 미군 차량이 시리아 북부를 떠나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자치지역 도후크주(州) 바르다라시로 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미군 완전 철수’ 결정 이후 최대 규모의 이동이었다. 앞서 미국은 시리아에서 총 1,000여명의 병력을 빼낸 뒤, 이라크 서부에 재배치하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AP통신이 “시리아 철군은 혼돈(Chaos)”이라고 표현했듯, 시리아에서 발을 빼는 미군이 맞이하는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당장 이라크 현지의 반응이 차갑기만 하다. 이날 바르다라시의 쿠르드인들은 이곳에 도착한 미군을 향해 “개자식들”이라고 소리치거나, 손가락 욕설을 하기도 했다고 WSJ는 보도했다. 이라크 칼락 지역의 쿠르드인 마흐무드 살라는 미군 철수를 ‘배신’이라고 언급하며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군의 시리아 철수 이후, 다시 꿈틀대는 이슬람국가(IS)가 테러자금의 젖줄이었던 유전을 재장악할 가능성도 골칫거리다. 이날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일부 병력이 시리아의 도시 두 곳에 여전히 주둔 중이며, 제한적 잔류 옵션도 논의 중”이라고 말한 건 이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당국자를 인용해 “IS를 막기 위해 200명이 석유 생산 지역에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WSJ는 “(하지만) 쿠르드인의 적대감이 시리아에서 IS의 부활을 막고 유전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향후 작전을 더욱 복잡하게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미군 철수의 최대 승자는 IS’라는 분석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군은 시리아 전장의 지상 작전과 관련, 중요 정보 수집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면서 “쿠르드민병대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의 지원 없이는 IS 잔재 세력을 소탕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의 중동 파병 이유가 결국 ‘석유’임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이날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그는 “석유를 지키는 것 말고는 (시리아에) 주둔할 이유가 없다”고 한 뒤, ‘배신론’을 겨냥한 듯 “미국이 그들(쿠르드족)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합의를 언제 했느냐”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우선순위는 인도주의가 아니라 ‘돈’에 있다는 걸 스스로 털어놓은 꼴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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